[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백의 대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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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40기KT배왕위전'

<도전자 결정전 하이라이트>
○ . 서무상 6단  ● . 이영구 5단

어디로 갈까. 도망칠까, 아니면 싸울까. 빠르게 혹은 느리게, 조심스럽게 혹은 사납게, 전후좌우를 살피고 높낮이를 잰다. 산 너머 저쪽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막막하구나. 앞 길이 깜깜하고 두렵구나. 행마를 결정한다는 것은 힘든 선택이다. 그래도 안개 속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춤추듯 나아간다. 빠르게 혹은 느리게, 조심스럽게 혹은 사납게.

장면도(46~57)=흑의 이영구 5단이 벼락같은 기습을 성공시켰다. 허리가 댕강 잘린 백의 앞 길이 험해 보인다. 서무상 6단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장고를 거듭한다. 어디로 갈까. 싸울까, 아니면 타협할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백 두 점은 요석이므로 버릴 수 없다.

백엔 두 개의 카드가 있다. 하나는 강경해 보이지만 실은 타협하는 수. 또 하나는 궁색해 보이지만 끝끝내 싸우는 수. 서무상은 결국 46으로 뛰었다. 타협 쪽을 선택한 것이다. 이영구는 지체 없이 47로 뚫고 49로 끊는다. 도배하듯 죽죽 눌러 막는다. 55도 선수라는 것이 너무 기분 좋다. 아무래도 이 결과는 백이 너무 당했다. 흑이 철벽을 쌓는 동안 백은 거듭 공배 비슷한 곳을 두었을 뿐이다. 또한 좌측의 흑 대마는 57로 안전하다.

참고도=백 1로 뛰는 것이 백이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카드였다. 프로들이 기피하는 이상한 행마다. 그렇더라도 실전은 워낙 쓰라린 진행이었으므로 46 대신 이 수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백 1은 위험한 수다. 흑이 전면전을 걸어올 여지가 있고 한 방에 끝장날 수도 있다. 그래도 A와 B를 맞보기로 해서 이처럼 버텨야 했다고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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