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혼란의 빠른 종식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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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박철언 장관 방북설, 남북한 비밀접촉설 등을 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설」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통일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놓고 이처럼 의혹과 혼란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도 괜찮은가 하는 걱정을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런 시기에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지 그 원인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고 이 현상이 정부의 대북한 정책의 추진능력에 심각한 손상을 주지나 않을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통일을 둘러싼 각계의 논의를 보면 우리사회의 합의된 기준과 방향이 뭔지, 뭐가 옳고 무엇이 그른지 한마디로 말해 뒤죽박죽이다. 이런 현상은 하루 빨리 정리·극복돼야하며 이를 위해 정부와 각 당사자는 최대의 성의를 갖고 해명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우선 각종 의혹의 해명이 필요하다. 박 장관은 과연 방북한 것이 사실인가, 남북한간에 비밀접촉이 있어왔던가 하는 점에 대해 정부와 박 장관은 더 이상 의문의 꼬리가 붙지 않도록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껏 정부와 박 장관은 나름대로 강력한 부인을 거듭했지만 그 부인이 과연 진실이냐에 대한 의심은 풀리지 않고 있다.
우리는 남북한간에 비밀접촉이 필요하고 오히려 더 강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까지 생각하지만 이미 방북설, 비밀접촉설이 이토록 떠들썩하게 터져 나온 이상 이 문제를 그냥 비밀로 묻어둔 채 넘어갈 수는 없다고 본다.
이미 이렇게 알려진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일 수 없고, 이런 의혹을 남겨 두고는 통일정책의 추진에 필수적인 국민적 합의의 토대가 마련될 리 없겠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박 장관은 남북관계와 대북 정책에 손상을 주지 않는 적절한 범위와 방법으로 해명함으로써 의혹을 확실히 종식시켜야 할 것이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우리는 남북간 비밀접촉은 필요하고 당연하다고 보지만 그러나 국민이 모르는 가운데 북한에 끌려 다닌 비밀접촉이나 상호주의 원칙을 벗어나 일방적으로 우리가 양보만 한 비밀교섭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믿는다.
가령 서경원· 임수경 사건으로 국민이 분노한 평축 기간에 방북, 행사를 참관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몰지각하고 철없는 대북 접촉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국민들이 이런 행위까지 비밀의 장막 속에서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용납할지 의문이다.
두 번 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 수많은 「설」들이 어떻게 이처럼 한꺼번에 터지느냐 하는 점이다. 남북한간의 비밀접촉과 같은 사안은 국가의 기밀 중에서도 최고의 기밀이라 할 수 있는 데 이것이 어떻게 야당의원에게 알려지고 「소식통」에 의해 그처럼 흘러나올 수 있는가.
이런 기밀에 접근이 가능한 사람은 여권의 수뇌들이라고 볼 때 이런 현상은 분명 여권 내부의 어떤 의도를 가진 측에서 일으킨 것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통일정책과 같은 막중한 일에 관해 여권내부에 심각한 분열, 이견이 있는 것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과연 이런 상태로 통일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시급히 팀웍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정부의 비밀 접촉이나 비밀방북을 문익환·임수경 등의 밀입북과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는 논의가 있다면 여기에는 찬성할 수 없다. 국민의 수임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행위와 실정법을 무시한 사인의 행위는 엄연히 구별돼야 한다.
정부의 그런 행위가 만일 졸렬했거나 부적절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지적·비판돼야지 정부의 누구는 가도 괜찮고, 민간의 누구는 가면 안 되느냐는 식으로 힐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요컨대 우리는 최근의 통일을 둘러싼 이런 파문이 하루빨리 정리되고 대북 정책에 손상을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해소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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