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정국서 벗어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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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교조파동, 개혁의 핵심인 구 악법개폐 등의 법개정 활동뿐만 아니라 서경원 의원 사건과 임 양의 밀입북으로 인한 사회적 충격과 통일정책의 혼선 등 국회를 통한 정치권의 수렴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이때에 정부와 제1야당인 평민당이 서로간 입지와 선택의 폭을 좁혀 가며 가파른 대결 국면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우리는 서 의원 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두 가지 원칙이 전제되어야 함을 거듭 강조해 왔다. 서 의원 사건이 단순한 밀입북이 아닌 간첩혐의 사건인 한 그 사건은 철저한 공안수사를 통해 그 진상이 분명히 밝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어떠한 정치적 막후절충이나 흥정으로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기를 촉구했다. 때문에 어떤 지위·신분의 사람이든 진상해명을 위해선 절차에 구애됨이 없이 수사에 협조할 것을 당부했다.
또 다른 전제는 공안수사가 공안정치로 흐를 위험성을 철저히 배제하라는데 있었다. 다른 어떤 사안보다도 예민하고 복잡한 정치인의 간첩혐의 사건을 두고 지난 시절 권위주의 정권들이 자행했던 사건의 조작과 확대라는 낡은 수법이 더 이상 재연되지 않기를 경고하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이처럼 상식적인 기본전제를 양쪽 모두 무시한 채 김 총재는 세 차례의 소환에 불응했고 공안당국은「2, 3명의 의원이 더 있다」와 친서 설 홀리기로 사건의 방향을 오도함으로써 이제 와선 서로 발을 빼기가 어려운 궁지로까지 몰려들게 되었다.
지극히 간단한 일을 참으로 복잡하게 몰고 간 사태의 전형으로 이번 구인사태는 기억될 것이다. 소환과 구인이라는 절차에 묶여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함에도 문제를 풀어야 할 사람들이 스스로의 손발들을 묶은 채「구인」과「장외투쟁」을 선언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김 총재는 스스로 구인장 집행에 당당하게 응할 것과 구인사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적극 밝히겠다는 태도 표명을 했다.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대치국면의 상황을 물어 가는 실마리는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한다.
진상을 밝히는데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이상, 공안당국은 구인 자체가 평민당 와해 또는 음해를 위한 공안 정략이란 의혹을 풀고 사건을 사건으로 다루는 깨끗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단순한 참고인으로서 수사마무리를 위한 형식적 소환이었다면 더 이상 불필요한 잡음을 내서는 안될 것이다.
마지막 남은 공안당국의 선택이라면 비록 구인장을 발부했더라도 김 총재의 자진출두 형식을 빌어 제1야당의 총재라는 신분에 상응한 예의를 갖춰 제3의 장소에서 진술을 끝내는 것이 현명한 마무리 작업이다.
평민당의 자세도 재고해야 한다. 사건해명은 사건해명이고 거기에 장외투쟁이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1야당이 극한 대결이라는 소모적 정치 놀이를 벌일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극심한 천재와 인재로 국민들의 불안심리가 높아져 가고 집단간의 이해상충과 갈등이 정치권의 해결을 그 어느 때 보다 갈망하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정국을 불안과 소요의 길목으로 몰아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공안당국의 늪을 한시 바삐 벗어나 빠른 시일 안에 임시국회를 여는 현명한 정치력의 발휘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함을 정부와 국회는 다함께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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