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7시 줄 선 사람만 100명···강남 부모 씁쓸한 자리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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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7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A학원 건물 앞에는 자녀를 좋은 자리에 앉히려는 학부모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건물 2층에서부터 줄을 선 사람까지 합하면 100여명 정도가 된다. 전민희 기자

26일 오전 7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A학원 건물 앞에는 자녀를 좋은 자리에 앉히려는 학부모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건물 2층에서부터 줄을 선 사람까지 합하면 100여명 정도가 된다. 전민희 기자

26일 오전 6시 서울 강남 대치동의 한 건물 앞에 10여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A학원에서 이뤄지는 B강사의 ‘생활과 윤리’ 수업을 듣는 자녀의 자리를 대신 맡아 놓으려는 학부모들이었다. 건물 2층에 있는 A학원 앞 복도와 층계에 서 있는 사람까지 합하면 약 50명 정도가 됐다. 30분 정도 지나자 대기자는 70명으로 늘었고, 한 시간 후에는 100명을 넘어섰다. B강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인기가 많은 ‘일타강사(수강신청이 첫 번째로 마감되는 강사)’다.

대치동 학원가 가보니

강남 학부모들의 ‘자리 전쟁’은 유명 강사의 수업이 있을 때마다 반복된다. 학원이 7시에 문을 열면 학부모들은 순서대로 자리 배치표에 자녀의 이름을 써넣는 식이다. 학원에서 선착순으로 자리를 배정하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맡으려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 가장 앞자리를 맡으려면 오전 5시에는 와야 한다는 게 학부모들 설명이다.

A학원에서 이뤄지는 유명 강사들의 수업은 300명 정도 되는 대형 강의가 많다. 그 때문에 자리 선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3 아들을 둔 김모(50·서울 강남구)씨는 "자리를 맡아놓지 않으면 뒷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그때는 칠판도 제대로 안 보인다. 이왕이면 앞자리에서 수업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에 지난 겨울방학부터 매주 일요일 아내와 번갈아 자리를 맡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대치동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이 학원 유명 강사들의 수업은 대부분 인터넷 강의로도 들을 수 있다. 집이나 독서실에서 편하게 강의를 수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새벽부터 줄까지 서가면서 현장 강의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온라인 강의는 일방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게 학부모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고3 딸을 키우는 고모(53·서울 강남구)씨는 “현장에서 강사와 눈을 마주치면서 수업을 들으면 집중이 훨씬 잘되고, 현장에서만 제공하는 자료도 있어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자리 전쟁에 대해서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정해진 시간에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선착순으로 배정하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선착순 줄 서기에 찬성하는 한 학부모는 “인터넷 예약으로 바꾸면 학부모들이 학원 대신 PC방으로 몰려들 것”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자리 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A학원 원장은 “3~4년 전에는 수업 시작 전에 학생들을 선착순으로 입장시켰다. 하지만 수업 2시간 전부터 기다리는 학생들이 생기면서 학부모들이 지금과 같은 방식을 제안해 이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 학원의 마케팅”이라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반 사람들은 권위적이거나 다수가 지향하는 것에 대해 순응하는 동조심리가 있다”며 “교육열이 높지 않은 학부모도 새벽부터 줄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불안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녀 성적은 물론, 자녀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학부모들의 노력까지 경쟁하는 사회가 된 것 같다”며 “학부모들의 과도한 지원이 아이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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