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밀유출, 총체적 외교 난맥…강경화 장관 책임질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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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책임’과 ‘원칙’이 실종된 인사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 통화 기록 누출 사건을 ‘국가 운영의 근본에 관한 문제’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유출 당사자는 물론 관리 책임자에게도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외교관들의 기강 및 기밀 관리의 최고책임자인 강경화 외교장관은 이번에도 책임을 묻는 대상에서 빠지는 게 확실해 보인다. 정부 조치는 주미 대사관 간부(공사급)를 징계하는 선에서 매듭짓는 분위기라고 한다. 강 장관 취임 이후 훼손된 태극기 게양을 비롯한 의전 사고와 외교관 갑질, 성 추문 등 기강에 관한 사건들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잦았다. 그때마다 강 장관은 재발 방지를 다짐했지만 사고는 꼬리를 물었고 급기야는 기밀 유출 사건까지 터졌다. 강 장관의 조직장악력에 심대한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외교장관 본연의 업무 역량 문제다. 작금의 한국 외교는 총체적 난맥에 빠져 있다. ‘단독 회담 2분’으로 상징되는 불편한 한·미 관계와 보복 조치 운운할 정도로 최악인 한·일 관계는 물론이고, 공들인 중국으로부터도 시진핑 주석 방한 무산 통보를 받고 속수무책이다. 청와대가 외교를 주도한다고 해서 외교장관의 책임이 면제되는 건 아니다. 면밀한 정세 판단과 현장 소통을 기초로 한 전략 수립에 외교부가 제 목소리를 냈다는 소리는 강 장관 취임 이후 들어본 적이 없다. UAE나 이라크 등 중동 외교에까지 대통령 참모를 지낸 측근들을 투입할 정도로 ‘외교부 패싱’이 심각하다.

강 장관의 존재감이 ‘한없이 투명에 가깝다’는 건 이미 나라 안팎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취임 초부터 그의 전략적 마인드와 전문성 등 자질 우려가 높았다. 불행하게도 강 장관은 재임 2년간 그런 우려를 조금도 씻지 못했다. 그런 강 장관을 유독 임명권자가 신임하는 건 국민들이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다. 이제 강 장관 스스로가 지난 2년의 난맥상을 되돌아보며 심각하게 거취를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