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이주한 불안계급의 초상··· 박정근 <입도조>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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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을 전후로 제주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도시의 생활공식을 따르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겠다는 이들이 제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바닷가나 중산간에 자리를 잡고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을 운영하거나 농사를 지으며 현지인의 삶으로 들어갔다. 이러한 이주민들을 일컬어 '입도조'라고 부른다. 입도조는 제주도라는 섬에 들어와 조상이 된 사람들을 뜻한다.

[入島祖 _ 입도조  _ 인해, Lazaro Rodrigueez]

[入島祖 _ 입도조 _ 인해, Lazaro Rodrigueez]

사진작가 박정근은 10여년 가까이 제주를 오가며 섬과 사람들을 기록했다. 해녀에서부터 4·3의 유가족, 그리고 입도조까지. 이러한 작업을 거치며 그들에게 자신을 투영해 자화상을 찍어 나가고 있었다. 제주를 기록하는 이유에 대해 박 작가는 "시작은 우연이었다. 우연히 제주에 머물게 되었고 거기 사람들과 자연에 이끌렸다. 제주서 먹은 밥숟가락 수가 늘어갈수록 내 신체, 정체성, 시간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역사와 현재가 이곳 제주에 고농도로 응집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는 이곳에 발을 딛고 끊임없이 새겨지는 인간과 자연을 나 역시 숨 가쁘게 읽어 내려가며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入島祖 _ 입도조 _ 종달리 당]

[入島祖 _ 입도조 _ 종달리 당]

박 작가는 도시에서 이주한 이들을 '제3세대 입도조'로 정의하고 있다. 그는 입도조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 진행될수록 자신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강해졌다고 한다. 비정규직 직장과 값싼 월세를 찾아 변두리를 전전하던 중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 이렇게 살려고 내가 여기 있나? 난 좀 더 중요한 사람이었어"라고. 그렇게 입도조가 짐을 싸서 제주로 내려오는 이유를 찾았다. 자연도, 사람도 선 곳이었기 때문에 "나로 그냥 살아가게 내버려 둘 것 같았다"고 한다.

[入島祖 _ 입도조 _ 이하나]

[入島祖 _ 입도조 _ 이하나]

박 작가가 느낀 불안에의 동질감은 사진에서 보여진다. 경제학자 가이스탠딩이 안정적 급여생활자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불안계급(precariat) 개념을 제안했는데, 이들 내에 Anxiety(불안), Alienation(소외), Anomy(사회적 무질서), Anger(분노)인 4A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논리에 기대어 입도조들을 불안계급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했다.

[入島祖 _ 입도조 _ 중산간 여신]

[入島祖 _ 입도조 _ 중산간 여신]

제주 땅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허공을 딛고 있는 듯한 두 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동시에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 입도조의 자손이면서 그 자체만으로도 취약한 아이들과 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로 민첩성과 이동성에 제한을 받게 되는 입도조들이 공통으로 표현됐다. 또한 주변환경과 입도조의 부조화를 나타내는 요소들(예를 들어 농구장의 문어 조각상, 푸른 산 너머 난데없이 머리를 내민 브라키오사우루스 구조물, 해변의 말쑥한 수트와 서류가방, 숲속 석유공장, 지상으로 향하는 하나밖에 없는 좁은 계단, 배경으로 보이는 아파트명 ‘에덴’, 돈내코 유원지의 무표정한 사람들 등)도 배치하여 불안계급의 불안정성이 사진 속에서 드러났다.

박 작가가 기록한 입도조의 초상은 6월 1일부터 24일까지 KT&G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6월19일에는 전시장에서 동명의 단행본 출간 기념회가 열린다.

장진영 기자, [사진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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