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반인륜적 범죄로 곤경

중앙일보

입력

15세 소녀가족 강간.학살사건 등 미군의 잇따른 반인륜적 범죄행각으로 미국과 이라크정부 모두가 곤경에 처했다. 미국정부는 금명간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해야할 판이다. 연일 발생하고 있는 반미.반정부 시위때문에 이라크 주권정부도 미군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할 상황이다.

◇"다국적군 면책권 재검토"=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5일 지난 3월 발생한 모녀 강간 및 일가족 살해사건에 대해 "이 사건처럼 이라크인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를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피해자가 저항을 주도하는 수니파이고 이슬람사회에서 절대 금기시 되는 성폭행 사건이어서 시아파 알말리키 정권은 곤혹스럽기만 하다. 알말리키 총리는 "다국적군에 부여된 이라크 법에 의한 형사소추 면책권이 이런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디사 양민학살 사건 등 올해 들어 계속 불거지고 있는 미군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주권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대책방안이다. 무능력한 친미 주권정부에 쏟아지는 국내외 비난을 피하기 위해 책임을 외부로 돌리려는 정책이다. 이라크 인권.법부장관 등은 이번 사건에 대한 유엔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과의 관계정립을 그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미국도 사태수습에 골머리=미 국방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조사가 끝나는대로 공식 사과할 방침이다. 이라크 뿐만아니라 이슬람권의 반미감정을 고려해서다. 하지만 사과의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 이라크 여론을 주시하는 등 고민중이다. 앞으로 이라크 장기주둔시 체결해야할 주둔군 지위협정(SOFA) 체결을 위한 협상이 본격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부는 올해 말 유엔안보리에 다국적군 철군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이후 주둔하는 각국은 이라크 정부와 개별적으로 SOFA체결이 필요하다.

이라크 주둔 미군 대변인인 윌리엄 콜드웰 소장의 5일 발언은 이번 사태의 수습방향을 시사한다. 소장은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죄를 반드시 처벌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자국법에 따라 엄벌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SOFA협상을 앞두고 벌써 양측간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주둔국의 형사소추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과 최근 양민학살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이라크법 적용을 국민에게 약속한 주권정부간의 향후 협상과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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