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의 안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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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행개위가 7월말 시한을 앞두고 14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개편 안을 내놓자 개편대상에 오른 정부 각 부처에서 반발이 속출하고 있다. 왜 우리 부를 없애러 하느냐, 왜 우리 권한을 축소하려 하느냐는 것이 반발의 주된 내용이고 행개위의 결정에 영향을 미쳐보려는 로비도 활발하다는 소식이다.
이런 해당 기관들의 반발이 경우에 따라 이유가 있고 이해할 만한 요소가 없지 않음을 인정하지만 원칙적으로 말해 우리는 과감한 개혁을 정부의 기본방향으로 삼아야 하고 그런 점에서 행개위의 개편안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원래 개혁을 하자면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고 그런 부작용에 일일이 신경을 쓰다가는 개혁은 불가능해진다. 행개위를 독립기구로 만든 것도 이해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정부 각 부처에 일을 맡겨서는 개혁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행개위가 그 동안 나름대로 마련한 개편안을 두고 기구가 줄거나 권한이 축소되는 측에서 이렇고 저렇고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처음부터 예상된 일이고 정부가 여기에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평소. 입버릇처럼 「간소한 정부」를 지지하다가도 자기 소관의 축소가 있으면 그런 말을 언제 했더냐는 듯이 펄펄 뛰는 것이 행정기관의 생리다.
행정개혁을 하자면 미시적 합리성보다는 거시적 타당성이, 현실적 안목보다는 미래지향적 안목이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과감한 개혁을 기본방향으로 정하고 행개위의 안을 존중하되 개혁이 미흡한 부분은 더 개혁할 수도 있다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주기 바란다.
행개위가 설정한 정부상은 「작고도 효율적인 미래 지향형」정부였고, 기본 방향은 시대변화의 추세에 맞춰 자율화·국제화·지방화` 복지화로 설정됐었다. 이 원칙에 따라 비민주적인 기구를 대폭 개폐하고 지방자치제 실시에 대비하여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던 행정업무를 지방가치기구와 민간기구로 대폭 이양하거나 간소화했으며 복지제도를 크게 확대했다.
그 결과 부총리가 2명으로 늘고 16부4처 12칭의 정부기구가 14부6처12청으로 축소되는 등 중앙기구가 42개에서 38개로 줄었다. 외형은 그대로라 해도 부분적인 개폐와 통합이 이뤄진 기구도 많아 이 안대로 라면 거의 모든 중앙정부 기구가 변화를 겪게돼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행정 개혁의 필요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 63년에 골격이 마련된 지금의 행정기구는 당시의 경제성장 추진과 국민통제의 필요성에 따라 이루어졌다. 단기간의 정책목표를 위해 급조된 기구도 많다. 따라서 정책의 목표가 이미 달성됐거나 변화된 상태에서 낡은 기구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다.
정부는 이런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기본적 인식을 전제로 앞으로 정부 자체 내의 검토, 당정 협의, 입법 등의 여러 과정에서 여론과 지혜를 더 반영해 과감한 행정 개혁안을 확정해야 할 것이다. 행개위의 개편안이 나온 이 시점에서 더 이상 이해 당사자들의 로비나 잡음이 계속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만 개혁과정에서 관의 사기가 떨어지거나 행정의 공백 현상이 생겨서는 안되며 직업공무원이 자리를 잃거나 생업의 위협을 받는 일이있어서도 안된다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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