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합의의 새 통일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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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6공화정 들어 통일 문제가 개방된 이후 통일논의가 백가쟁명식의 혼란을 빚어 왔다. 급진 세력에 의해 주도된 통일운동도 합의된 질서를 벗어나 난조 현상을 보여 왔다. 그 이유는 대개 논리적으로 팍 짜여진 통일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새로운 통일 방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하고 각계 각층의 의견을 널리 청취해 왔다. 이제 그 결실이 이뤄져 정부·여당이 새로 통일방안의 시안을 마련했다. 이 시안의 골격은 대결에서 통일까지를 3단계로 규정하고있다.
제1단계에서는 당국 차원의「남북 각료회의」와 의회 차원의 「민족 통일 협의회의」를 구성하게 된다. 이 단계는 현재의 남북한 제도와 이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여 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시기다.·
제2단계에서는 통일 협의회의에서 「통일 헌법안」을 만들어 남북한 국민투표로 확정하게 된다. 이 단계는 남북한 사이에 통일 방식을 결정하는 시기다.
제3단계에서는 확정된 헌법 절차에 따라 남북한 총 선거를 실시하여「통일 의회」와 「통일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이 단계는 통일절차를 집행하는 통일 완성시기다.·
이 안은 통일 정부를 중앙 집권적 단일 정부로 하여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관계를 배제했다. 통일 의회는 남북 동수의 「지역 대표제」 (상원격)와 남북 인구 비례에 의한 「국민대표제」 (하원격) 를 병용하여 양원제로 하기로 했다.
새 통일 방안은 현재 남북한 관계가 처해있는 대결구도 속에서 볼 때 당장은 현실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6정 초기부터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낙관적이고 단편적으로 제시한 통일 정책을 북한이 역이용하려 하고 있는데 대한 대응 통일논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은 현실성이 없더라도 새 통일 방안이 갖는 장기적인 가치는 대단히 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중요성을 인식해 우리는 새 통일 방안이 면밀하고 광범한 절차를 거쳐 시행 착오의 여지없이 다듬어져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부·여당의 통일 방안이 국민의 통일 방안이 되기 위해서는 재야를 포함한 광범한 공개 토론에 부쳐 여론을 수렴하고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 2개의 과정을 거치는동안 내용이 수정, 보완되기 바란다.
이런 절차를 거쳐 통일 방안이 확정되면 이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통일논을 하나로 정리하고 그것을 가지고 북한과 통일 협상을 시작해야한다. 그 때 가서 또다시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통일 논의의 혼란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된다.
통일 방안이 마련됐다고 해서 곧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통일 방안대로 통일이 이뤄져 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합의된 통일방안은 통일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질서 있는 통일 논의와 통일 운동을 벌여나갈 골격을 마련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통일은 통일 지상론자들처럼 환상에 젖어 감상주의에 빠져도 안되고 서두른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또 통일 공포증에 빠진 일부 견해처럼 통일논의를 기피한다고 통일이 지체되는 것도 아니다. 온 겨레가 통일을 목표로 함께 고민하고 부단히 노력할 때 통일은 가까워질 수 있다. 합의된 통일 방안은 이런 통일 노력의 기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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