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충수둔 국책은 노조 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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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수길(경제부 기자)】이제까지의 노사분규나 이른바 공안정국이 굴러온 과정은 몇 가지 교훈을 시사한다.
우선 노·사·정이나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어차피 상대 세력과의 역학 관계는 근본적으로 대림과 갈등의 구조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또 그 대립과 갈등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설 땅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쪽의 잘못으로 인해 상대방이 가만히 앉은 채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도록 만드는 자충수는 두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노사분규나 정국의 흐름을 보면 잘 나가다가도 그만 악수를 두어 본전도 못 건지는 경우가 흔히 있어 그같은 졸공졸수의 판세에서는 상대방이 악수를 두기를 기다리기만 해도 너끈히 자신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번 시은 임금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할 「틈」을 준 것은 애초 14·5%의 인상안을 3개 은행의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시켰던 악수였다.
또 서경원 의원 사건이 모처럼 정부의 입지를 강화시켜준 재료였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부고지죄의 남발로 약효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같은 뜻에서 4개 국책은행 노조가 지난 7일 대대적인 신문광고를 통해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이나 수출 둔화에 별로 「기인하는바 없으며 따라서 임금 인상→경제 위기론은 허구이고 나아가 자기 몫의 한자리수 자체를 강조하는 하반기 경제 종합 대책이 「늑대와 소년이야기」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악수가 아닌가 싶다.
불행히도 지금 우리 사회는 『추곡 수매가가 오른 만큼은 내 봉급도 올려야 한다』『혹자든 척자 든 동종 업종 만큼은 우리도 봉급을 올려야겠다』는 이상한 논리가 판을 치고 있고 국민들이 은행원들을 보는 시각에는 적어도 이들만은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포함돼 있다. 더구나 은행원들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국책은행 노조가 인용한 계량적인 분석이라는 것도 이를 반박할만한 계량적인 분석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국책 은행 노조가 더 이상의 자충수를 두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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