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이젠 금융이 혁신성장 이끌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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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장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장

공장 부지를 빌려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A씨라는 사업가가 있다. A씨가 자금을 조달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그는 최근 특허권이 있는 기술개발에 성공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부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매출도 증가해 공장 증설을 계획한다. 그러나 A씨는 담보로 제공할 부동산이 없다. 추가대출이 여의치 않아 공장 증설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A씨가 특허·생산설비·재고자산·매출채권 등 동산을 담보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일단 급한 불을 끌 수 있다. A씨의 기술력이 제대로 평가받고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 인정되면 신용대출도 쉬워진다. 비록 부동산 담보가 없더라도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에서 부동산 담보는 금융거래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혁신적인 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왔다. 과거의 관행을 지속하다간 혁신성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제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동산도 담보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과 성장성을 포함한 기업의 미래가치를 기초로 신용대출이 용이한 혁신금융의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혁신금융의 화두를 풀기 위해선 단계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우선 혁신 기업의 동산을 일괄 담보화하는 게 중요하다. 특허·생산설비·재고자산·매출채권 등 각각의 동산 담보를 하나씩 처리하면 행정비용이 과다하게 소요된다. 기업이 가진 동산을 일괄 담보로 처리하면 관련 비용을 줄이고 담보가치도 높일 수 있다.

다음 단계로 기업의 신용을 평가할 때 기술력 평가가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 기술력은 기업의 미래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기술인력의 수준, 연구개발(R&D) 역량, 비슷한 기업과 비교한 기술우위 등을 평가지표로 반영해야 한다. 우수한 기술기업이 신용대출을 용이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정보도 기업의 신용평가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업에게 신용대출이 용이해지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재무제표가 기업의 과거를 얘기하는 정보라면 동산 담보는 현재의 모습을 알려주는 정보다.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 등은 기업의 미래 모습을 가늠케 한다. 이런 정보들이 포괄적으로 합쳐져야 기업의 상환능력이 제대로 평가될 수 있다.

혁신성장의 주체는 혁신기업이다. 그리고 혁신기업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혁신금융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혁신금융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한 이유다.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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