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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인지 감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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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 차장

하현옥 금융팀 차장

“경제학자 입장에서 투자와 투기는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그 정도의 차이로 이해한다.” 암호화폐 투자 광풍이 몰아치던 지난해 1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 투자는 ‘이익을 얻기 위해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정성을 쏟는 것’이다. 투기는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하거나 시세 변동을 예상해 차익을 얻기 위해 하는 매매 거래’다.

다음 중 투기에 해당하지 않는 걸 고른다면 어떨까. ①1주택 보유자로 갭 투자한 아파트가 재개발됐다. 아파트값은 투자액의 5.5배 올랐다. ②1순위로 당첨된 분양권(딱지)을 20일 만에 팔고, 더 비싼 인근 아파트를 샀다. ③은행 등에서 11억원을 빌리고 전세 뺀 돈까지 합쳐 25억원이 넘는 2층 건물을 샀다. 재개발 대상인 건물의 시세는 35억이 넘는다.

상당수의 한국인은 ‘정답 없음’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 3개 항목이 사회 통념상 투자보다 투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서다. 이견도 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투기는 이미 집이 있는 데 또 사거나, 시세 차익을 노리고 되파는 경우”라며 자신의 사례인 ③번은 투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청와대도 세상과 동떨어진 투기 인식 수준을 드러냈다. 각종 투기 의혹에 어제 자진사퇴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①번)와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②번)가 청와대 검증은 통과했다.

투기 논란 속 인사청문회 파행이 이어지자 경실련은 “부동산 투기에 너무 둔감해져 발생한 참극”이라고 촌평했다. 청와대와 여당, 높은 분들에게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투기 인지 감수성’이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투기 내로남불’에 국민 맞춤형 ‘투기 인지 감수성’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하현옥 금융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