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동북아 외톨이 되지 않도록 미국과의 ‘정책 엇박자’ 경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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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워싱턴 외교가에선 “이대로라면 한·미 정상회담도 어렵다”는 냉소적인 말들이 나온다고 한다. 한·미동맹 관계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베트남 하노이의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의 정책 방향이 엇박자를 내는 상황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미흡한 비핵화 방안을 확인한 미국의 대북제재는 요지부동이며 더 강화될 조짐도 감지된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핵심 제재 대상인)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를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하며 역주행의 입장을 내비쳐 왔다.

한국의 ‘금강산·개성 제재 해제’ 거론에 #미 의회 내 “한국이 달에 총을 쏘는 외교” #동맹의 불신 발생 않게 세심히 관리해야

급기야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그제 “북한에 대해 어떠한 환상(illusions)도 갖고 있지 않다”며 최근 북한의 핵물질 생산과 미사일 활동에 대해 경계했다. 볼턴 보좌관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동향과 관련해 북한 측과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아는 바가 없다. 다만 한국이 북한과 이야기했을 가능성은 있다”며 동맹인 한국을 의심하는 듯한 뉘앙스의 언급도 했다. 그동안 우호적이었던 미 의회에서마저 “한국이 (‘달을 향해 총을 쏜다’는 즉 불가능의 너무 큰 꿈을 뜻하는) ‘shooting for the Moon’ 외교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냉소까지 나오고 있어 우려가 크다.

이런 분위기에 더해 최근 핵무장력을 유지·강화하려는 듯한 김 위원장의 태도 역시 문제다.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 중에도 핵무기 재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핵무기 6개 분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했다는 정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도 북한이 철거 중이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지난주 공개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기지가 있는 산음동에서 미사일 자재를 옮기려는 활동도 포착됐다. 그래서 볼턴은 “3차 북·미 정상회담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며 기대 수준을 낮춰 가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의 비핵화 의도에 대한 정교한 리뷰보다 대북제재 해제를 위해 미국과 논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오랜 동맹인 미국의 불신을 키울 우려가 크다. 미국과 국제사회 모두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원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의 단계적인 비핵화는 아무리 봐도 완전한 비핵화에 가까이 가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오히려 북한이 핵보유국을 인정받고 미국과 단계적 핵군축을 하겠다는 입장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방위비 분담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해 앞으로 계속되는 마찰을 예상케 한다. 한·미 연합훈련에 돈이 많이 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협상 국면 유지를 감안해 최근 한·미연합훈련도 대폭 축소한 터다. 한·일 및 한·중 마찰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자칫 운신을 잘못하면 한국이 동북아의 외톨이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은 어떤 정책보다 우선 미국과의 공조를 굳건히 유지하고 세심히 관리해가는 게 우리 정부의 최우선 행보가 돼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