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몰랐다"···회삿돈 32억 빼돌린 가스안전공사 간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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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안전공사 전경. [중앙포토]

가스안전공사 전경. [중앙포토]

내연녀가 차린 유령업체를 통해 뇌물을 받고 회삿돈 수십억 원을 빼돌린 한국가스안전공사 전직 간부가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 계약유지 대가 18억 챙긴 가스안전공사 간부 적색수배 #아내도 모자라 내연녀 명의 빌려 유령업체 차려 허위 하도급 #통신업체 영업담당과 짜고 보안비 명목 32억원 배임 혐의도

충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통신업체 간 인터넷 전용선 계약과정에서 계약 연장 등 대가로 18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를 받는 가스안전공사 전직 간부 A씨(51)를 쫓고 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통신업체 직원과 짜고 회삿돈 32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도 받고 있다.

경찰 수사결과 A씨는 가스안전공사 계약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통신업체 L사 공공영업 담당부장인 B씨(50)에게 200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매월 500만원씩 11억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 가스안전공사는 2002년부터 L사와 연간 10억원 정도의 인터넷 전용선 계약을 맺었다. 두 기관 간 계약은 5년 단위로 2차례 연장됐다. 경찰관계자는 “B씨가 규모가 큰 가스안전공사와의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통신업무를 전담하는 A씨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A씨와 B씨는 평소 해외 골프 계 모임을 하는 등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는 관계였다”고 설명했다.

A씨는 아내 명의로 된 ‘페이퍼 컴퍼니’ 형식의 통신망 유지보수 업체를 통해 B씨가 송금한 돈을 받았다. B씨는 ‘인터넷 전용선 보수 비용을 하도급 업체에 지급했다’는 허위 계약서를 작성해 L사에 보고했다.

뇌물 이미지. [중앙포토]

뇌물 이미지. [중앙포토]

A씨는 같은 수법으로 가스안전공사 통신망 유지보수를 맡는 업체 대표 C씨(47)와D씨(55)로부터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월 400~600만원씩, 총 7억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돈은 A씨의 내연녀 E씨(46) 명의로 된 허위의 하도급 업체로 흘러 들어갔다. 경찰은 E씨가 뇌물 전달을 돕는 대가로 매월 받은 돈의 10% 정도를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관계자는 “A씨가 계좌 추적을 피하기 위해 내연녀의 여동생이나 지인을 통해 뇌물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A씨와 B씨는 2010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인터넷 요금을 부풀리거나 전산시스템 보안 명목으로 가스안전공사 통신관련 예산 32억원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가스안전공사의 인터넷 유지보수 금액은 월 8500만원 정도인데, 이중 매월 3000만원을 보안비 명목으로 8년간 가로챘다. 빼돌린 돈은 A씨의 내연녀 명의의 유령회사와 B씨와 평소 알고 지낸 인터넷 수리업체가 공사한 것처럼 조작해 전달받았다. 경찰은 32억원을 A씨와 B씨가 나누어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거액의 뇌물 등을 해외 골프 여행과 유흥비, 내연녀 관리에 대부분 탕진했다.

A씨의 범행은 2017년 말 가스안전공사가 진행한 내부감사에서 위조된 인터넷 사용 계약서를 발견해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밝혀졌다. 경찰관계자는 “공공기관 감독부서가 전산시스템에 사용되는 하드웨어 관리나 소프트웨어 유지보수의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IT 부서의 관리가 허술했던 것 같다”며 “IT 담당자가 외부 업체 선정과 계약 문제를 도맡으면서 A씨의 범죄 행위가 수년간 적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충북경찰청 전경. [사진 충북경찰청]

충북경찰청 전경. [사진 충북경찰청]

경찰 수사가 시작하자 A씨는 지난해 10월 필리핀으로 출국했다. A씨는 가스안전공사에서 해임된 상태다. 경찰은 A씨에 대해 인터폴 적색 수배를 내렸다. 경찰은 특가법상 뇌물공여, 특경법상 배임 혐의를 받는B씨를 구속하고, A씨의 범행에 가담한 통신망 유지보수업체 대표 등 4명은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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