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경수 판결을 저잣거리의 흥정 대상으로 삼을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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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더불어민주당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가 어제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1심에서 법정구속한 것은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망각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법과대학 교수 등 외부 전문가가 발제를 맡아 진행한 기자간담회였다. 참석자들은 ▶김 지사의 유죄를 입증할 직접 증거가 부족하고 ▶드루킹 일당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그 근거를 댔다. 재판부가 드루킹과 관련자들의 허위나 과장 진술을 과소 평가하고 김지사에게 “무죄 증명을 해보라”고 한 것은 증거재판주의와 검사 입증 책임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민주당 “형소법 대원칙 망각한 판결” #사법 불복종은 국정 운영에 치명타 #항소심서 치열한 법리 논쟁 벌여야

“정황 증거와 추론에 근거해 선거로 뽑힌 현직 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따르는 적폐세력의 보복”이라는 게 이들의 일관된 논리다. 이날 행사와는 별도로 민주당은 “법원이 김 지사의 보석 신청을 받아줘야 한다”(이해찬 대표) “국민이 사법부를 압박해야 한다”(윤호중 사무총장)는 발언을 하며 ‘김경수 구하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민주당 지도부의 이같은 언행은 그 내용은 물론 형식에 있어서도 문제가 적지 않다.

먼저 사법부 판결에 대한 불복종이다. “김 지사 재판부가 궁예의 관심법(觀心法) 같은 심증판결을 내렸다”는 주장은 부박(浮薄)한 정치적 선동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김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씨와 공모관계를 의심케 하는 각종 증거들에 대해 명확한 반론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지사가 댓글 조작 시스템인 킹크랩 시연회에 참석했던 장면이 찍힌 CCTV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특검이 제시한 관련자들의 진술과 동선,이후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어느 쪽이 더 신뢰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건 전적으로 재판부의 몫이다.

둘째, 법과 제도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법원의 판결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판결에 대한 불만은 법의 테두리에서 호소하고 풀어야 한다. 삼권 분립과 법치주의가 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존재하겠는가. 민주당은 항소심 재판부가 배당되자 마자 주심 판사의 이력을 문제삼고,김 지사를 보석으로 풀어줘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만약 그가 보석으로 석방되면 사법부는 또 어떤 비판을 받을까. 민주당은 지금부터라도 조밀한 증거와 법논리로 항소심 재판에 대비하는 것이 순리다.

셋째, 군중의 세를 이용한 위력 과시의 부분이다. 김 지사가 법정구속된 이후 집권당과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광화문 집회를 통해 사법부는 물론 판사 개개인들을 향해 비판을 넘어선 조롱과 멸시의 폭언을 쏟아부었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당으로서 정권만 걱정할 뿐 나라와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일반 시민들이 판결에 불만을 품고 거리를 점거하면 민주당은 과연 뭐라고 말할 지 궁금할 뿐이다. 사법부의 판단과 결정을 법정이 아닌 저잣거리의 흥정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싶은 게 민주당의 속내인가. 묻고 싶어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