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무인자동차 달리는 시대···미터기로 싸우는 韓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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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출근길 이용한 택시에서 내릴 때 미터기에 표시된 요금보다 1500원을 더 내야 했다. 16일 오전 4시 서울 택시 요금이 인상되면서 별도의 조견표에 따라 요금을 추가하기 때문이다. 기사 이모(50)씨는 극구 1000원만 더 내라고 했다. 이씨는 “16일부터 모든 손님에게 몇백 원 단위는 깎아주고 있다”며 “(조견표 보기가) 복잡하고, 요금 문제로 승객과 괜한 시비가 붙을까 걱정돼서”라고 말했다. 또 “한 우즈베키스탄 승객이 ‘왜 미터기에 표시된 것과 다른 금액을 달라고 하느냐’고 따져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고도 했다.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난지천공원 주차장에서 새 요금체계로 프로그램이 교체된 택시 미터기 설치되고 있다.[뉴스1]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난지천공원 주차장에서 새 요금체계로 프로그램이 교체된 택시 미터기 설치되고 있다.[뉴스1]

서울 택시를 탈 땐 늦으면 이달 말까지 미터기에 표시된 액수와 다른 요금을 치러야 한다. 택시비는 올랐지만 미터기는 아직 옛 요금 체계 그대로여서다. 인상 요금은 택시 안 조견표를 봐야 알 수 있다. 서울 택시 7만2000대 전체의 미터기 수리는 18일부터 시작해 이달 말에야 마무리된다. 승객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일부 승객들은 습관처럼 미터기 요금만 보고 카드 결제를 했다가 추가 요금을 다시 결제하기도 한다. 일분일초가 급한 승객에게 추가 요금 입력 시간은 길게만 느껴진다. ‘바가지요금이 아니냐’는 승객과 기사 간에 괜한 불신마저 조장한다.

서울 택시기사들이 18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서 택시를 세워둔 채 미터기 수리 순서릴 기다리고 있다.[뉴스 1]

서울 택시기사들이 18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서 택시를 세워둔 채 미터기 수리 순서릴 기다리고 있다.[뉴스 1]

지금처럼 기계식 미터기를 쓰면 요금 체계가 달라질 때마다 택시에서 일일이 미터기를 떼어내 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해야 한다. 미터기를 미리 수리할 경우 인상 시행 이전부터 인상 요금이 반영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미터기 대란’은 과거 요금 인상 때마다 되풀이됐다. 조견표를 기준으로 요금이 부과되면서 기사와 승객 간에 시비가 잦았다. 미터기 수리 과정에서 치러야 하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지정된 수리 장소에 택시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교통 혼잡이 극심했다. 이번엔 60여 개 미터기 수리 업체들이 일제히 한 대당 수리비로 7만원을 요구해 택시 업계가 반발하기도 했다.

택시비는 계속 오르는데 미터기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예견된 혼란과 갈등인데도 서울시와 정부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무인 자동차까지 등장한 시대에 전형적인 아날로그 행정이다.

서울시가 이번 택시비 인상을 추진한 건 2017년 10월이다. 택시 요금은 5년4개월 만에 올랐다. 시민과 기사의 불편을 덜어줄 최소한의 준비 없이 요금부터 올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 작업자가 18일 난지천공원에서 택시 미터기를 수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작업자가 18일 난지천공원에서 택시 미터기를 수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새 요금 부과 시스템이 자동 업그레이드 되는 디지털 앱 미터기는 거의 완성 단계라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요금 인상이 확정된 이후인 올 초부터 부랴부랴 ‘앱 미터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난지천 공원 주차장 앞 에서 택시들이 미터기 교체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난지천 공원 주차장 앞 에서 택시들이 미터기 교체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앱 미터기 도입 추진이 늦어진 것에 대해 ‘규제’ 탓을 한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은 미터기 수리와 검정 방식 등을 기계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규제 당국이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금 인상 폭과 시기에 대한 논의만 있었지, 정작 시민과 택시 기사의 불편함에 대해선 손 놓고 있었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준비 안 된 요금 인상’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더 걱정되는 게 있다. 다음 요금이 오를 때까지 5~6년간 새 요금 부과 시스템이 ‘긴 낮잠’을 자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이다.

임선영 복지행정팀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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