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위험신호" 켜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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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경제가 어둡다. 지금 상황이 어두울 뿐만 아니라 현재로선 장래를 밝게 볼 요인마저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에 어두움이 더 두꺼운 무게로 짓눌러 오고 있다. <관계기사 5면>
올 연초에는 노사분규를 겪으면서도 사람도 크려면 그렇듯이 우리 경제도 더 성장하기 위한 진통을 겪는 것이겠거니,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거뜬히 일어서겠거니 여겨지던 것이 어느새 중증으로 들어서 빠른 속도로 악화 일로를 걷고있는 느낌이다.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요즈음에는 일체 자취를 감추었고 최근의 각종 경기 지표를 보면 이러한 걱정이 단순한 기회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케 하고 있다.
우선 종합 성적표라 할 수 있는 GNP(국민 총생산)가 지난 1·4분기에 5.7%로 하락, 84년 4·4분기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성장률 자체도 문제려니와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그 내용이다. 우리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제조업 성장률이 1년전 같은 기간의 19.1%에서 1%로 뚝 떨어진 것이다.
또 국민 총생산은 5.7% 증가에 그쳤는데 소비 지출은 9.7%, 그 중에도 민간 소비지출은 10.3% 증가를 기록했다. 물론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우리로서는 내수기반의 확충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내수증가가 흥청대는 과소비로 나타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국내소비의 증가는 임금 상승과 맞물리면서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5월말 물가는 이미 연간 억제 목표 5%의 절반수준을 훨씬 넘는 2.9%를 기록했다.
연 율로 따지면 6.9%의 높은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경제의 견인차라 할 수출이 침체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5월말 현재 수출실적(통관기준)은 2백37억7천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6.7%증가에 그쳤고 지난 3월이래 연속 3개월 적자를 기록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장·수출·물가의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고 뽐내던 우리경제가 세 마리 토끼를 한번에 놓치고 만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하면 자명하다. 수출과 성장의 둔화는 바로 실업을 가져오고 물가상승은 서민들의 가계압박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올 들어 3월말까지 11만9천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신규 인력 중 6만5천명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필품 가격도 최고 2백%이상 오른 품목까지 있다.
6공화국 들어 우리가 가장 강조해온 것이 복지 향상이었지만 지금 사태는 반대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문턱에 닿았다고 기대를 부풀리던 우리경제가 이처럼 만신창이의 모습을 보이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없었던 게 아니다. 통상 마찰과 원화 절상압력, 국제 원자재 가격상승 등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대외여건 변화가 그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외부여건보다 우리자신이 스스로의 목을 죄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끝 모르게 이어지는 임금상승 등 각계의 소득 보상적 욕구가 그것이다.
물론 우리는 과거 성장일변도의 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소득의 적정배분과 균형발전을 새 지표로 내걸었고 임금 상승과 소외계층의 권리 주장을 시대적 요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목표는 그렇더라도 길을 잘못 들고 있다.
이대로 질주하면 나라나 전체 경제가 어떻게 될지 현실 인식은 외면한 채「없는 자」는 「없는 자」대로「있는 자」는 더 더욱 자기 이익을 지키고 부풀리는데 맹목성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우리 경제가 아직 돌아설 수 없는 회귀점을 넘어서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고 하기에는 이르다.
수치는 낮으나 아직도 성장은 지속되고있고 활력을 잃지는 않았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자위만 하고 있기에는 그 동안 실기의 기간이 너무 길었다.
한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문제와 갈등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경제도 이와 다를 바 없어 이제부터라도 국민 모두가 문제를 추스르고 담는 해결 능력을 경주하지 않는 다면 결국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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