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25년 전 일기장…고은 성추행 진실 밝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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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가 최영미 시인의 증언을 사실이라고 판단하게 된 주된 증거 중 하나는 최 시인의 일기장이다. [중앙포토, 연합뉴스]

재판부가 최영미 시인의 증언을 사실이라고 판단하게 된 주된 증거 중 하나는 최 시인의 일기장이다. [중앙포토, 연합뉴스]

법원이 15일 고은 시인에 대한 최영미 시인의 성추행 폭로를 허위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된 결정적 증거 중 하나는 최 시인의 당시 일기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 시인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이상윤)는 최 시인이 재판부에 낸 그의 일기장을 중요 증거로 인정했다.

최 시인은 1994년 늦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의 한 술집에서 고 시인의 ‘추태’를 직접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당초 최 시인은 고 시인의 성추행 등 부적절한 행위가 벌어진 시기를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로 다소 포괄적으로 특정했다. 이에 고 시인 측은 “그런 사실이 없는 만큼 의혹을 제기한 측에서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라”고 맞섰다.

재판 과정에서 최 시인이 동생 조언을 받아 예전에 작성한 일기를 찾아내 증거로 제출했다. 최 시인의 동생 최영주씨는 “언니는 예전부터 ‘내 재산 1호는 일기야’고 말할 정도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며 당시 일기장을 찾아보라고 권유했고, 최 시인은 당시 일기를 찾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 일기의 1994년 6월 2일자에는 고 시인 사건을 의미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최 시인의 책상 서랍에 보관된 일기는 총 노트 9여권, 메모장 5~6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6월 2일 작성한 최 시인의 일기에는 ‘광기인가 치기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오기인가 - 고 선생 對(‘대하여’의 약칭) 술자리 난장판을 생각하며’라고 적혀 있었다. 재판부는 이 같은 ‘기록’이 최 시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994년 6월 2일자’ 일기가 최 시인 주장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최 시인이 고은 시인의 술자리에서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목격했음을 추단케 하는 일기가 존재하고, 그 일기가 조작됐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고 시인 측은 최 시인이 자위행위를 목격한 시간을 1분에서 30분으로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진술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재판부는 “25년 전에 목격한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고 시인 측은 최 시인이 사건 당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며 최 시인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너무 놀라서 가만히 있었다는 최 시인의 주장은 수긍할 수 있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부수적인 사정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는 없다”며 고 시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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