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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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선시첩』이란 시집이 있었다. 6·25 전란의 와중에서 나온 시집이다.
당시 임시 수도 부산으로, 또는 대구로 피난 갔던 시인들이 종군시인이 되어 전선에서 병사들과 함께 싸우고 생활하며 쓴 시도 있고, 현역 군인들이 틈틈이 쓴 시도 들어 있었다.
그 시편들을 오늘 다시 읽는 것은 감회가 깊다. 그 시속에는 생생한 조국이 있고 민족이 있고,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꽃다운 젊음이 있다.
『솜구름이 말가히 나르고 푸른들 기름진 땅/불꽃이 마구 올라 붙는 하늘이 서러웁거든/우리 눈알을 한데 모아 조국으로 가자/노래를 한데 묶어 조국으로 가자/…조국은 자랑스런 우리의 깃발이다/조국은 자랑스런 우리의 훈장이다』
신동집 시인의 『조국으로 가는 길』은 우리에게 조국이 무엇인가를 깨우쳐주고 있다. 더구나 그 평화롭던 조국이 누구에 의해 시달리고 있었던가.
『하늘을 보고 외쳐봐도/산을 보고 외쳐봐도/너는 돌아오지 않는 조국의 영혼/두 어깨 두 손을 잡고 일깨워 너를 불러도/종시 대답이사 없을 줄 알면서/또 다시 불러보는 너의 이름아』
이윤수 시인의 『전우』는 새삼 동족상잔의 비극에 몸서리를 치게 한다.
그러나 이들 시보다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시」들이 있다. 동작동 국립묘지에 새겨진 비명들.
『당신과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때에도 난 역시 당신의 아내가 되리/눈물은 언제나 마를 날이 없어 비가 되어 내리는 그 때에도 난 역시 당신의 아내가 되리/넓고 넓은 저승길 반만년 헤매어서 당신의 품에 안기어서 당신의 입술에 입맞추고/나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는 그 사람 그 때에도 난 역시 당신의 아내가 되리.』
『아빠, 몹시 보고 싶어요. 꿈에라도 보고 싶어요. 몹시 불러보고 싶어요. 말씀이 듣고 싶어요. 아빠, 언제 만나게 될까요.』
그렇다. 묘비명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것이다.
6일은 현충일. 국립묘지의 묘비명은 오늘도 이렇게 묻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으며, 또 무엇을 하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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