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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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느 일요일 아침 잠을 깬 베를린 시민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젯밤까지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해 확 트였던 건너편 칼 마르크스대로가 살벌한 철조망으로 가려져 있었다.
유럽에서의 동서냉전의 상징으로 악명 높은 베를린 장벽은 1961년8월13일 새벽 2시 수천 명의 동독군인·경찰·민병들이 동원돼 삽시간에 쳐졌다. 이 철조망은 어느 틈에 약 45km에 걸쳐 높이 4m, 두께 40cm의 철근콘크리트 옹벽으로 바뀌었다.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고향 베를린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우중충한 시멘트 담장은 도시 미관상으로도 결코 유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작게는 독일, 크게는 세계를 두동강이로 나누는 깊고 깊은 「마음의 장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헬무트·슈미트」 전 서독수상은 이 베를린 장벽을 가리켜 『인간의 손으로,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진 가장 추악한 건조물』이라고 표현한 일이 있었다.
최근 나토 창설 40주년 기념 회원국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부시」 미국대통령도 서독에 들러 이 베를린 장벽을 『공산주의의 실패를 의미하는 기념비』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장벽을 헐어 동베를린에도 글라스노스트를 실현시켜야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것은 지난 5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에 설치돼 있었던「철의 장막」 전기철조망이 40년 만에 철거된 것과 때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동독으로서는 뼈아픈 충고가 아닐 수 없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베를린 장벽보다 더 크고 더 철통같은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휴전선이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는 휴전선 남방 한계선 부근의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 일부를 북상조정, 10개 지역 6천1백77만 평에 대한 민간인의 출입통제를 해제했다.
비록 휴전선의 철조망은 그대로 있다 하더라도 국토분단 44년, 6·25동란 39년 만에 황폐했던 단절의 땅을 밟고 북쪽으로 조금씩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장벽을 쌓을 때가 아니라 헐어버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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