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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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떠돌이 습성을 못버리는 여우도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제 나서 자란 언덕쪽으로 머리를 향하면서 죽는다고 한다.
「수구초심」이 라는 고사성어가 그래서 있게 되었다. 여우의 머리속에 제난 곳과, 낳아서 길러준 어미 품안 생각이 늘 짙게 무늬져 있었던 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현대인을 가리켜 「실향민」 이라 했다. 한말이래 삶이 어려워서 북간도며 시베리아로, 갔던 사람들, 사할린동지로 징용갔다가 못 돌아온 사람들, 남북 분단과 6·25 비극 때문에 넘어가고 끌려가고 버리고온 사람들, 고도산업 시대의 세찬 바람에 휩쓸려버려 나서 자란 곳을 어쩔 수 없이 떠나 사는 사람들, 까닭들을 캐자면 참으로 갖가지 일 것이다.
이래저래 오늘의 우리는 고향 잃은 사람들이 되어 있다. 그래서 애틋해지고 사무쳐지는 것이리라. 그러한 마음의 무늬가 3장으로 굽이치면서 속속 응모되고 있다. 우선 4편만 가리기로 했다.
이인수의 『고향』 3수는 잠시 고향에 들러 그곳이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는 것과, 그의 어린 시절 그곳이 어떠했음을 돌이켜보고 있다. 한마디로 이 3수의 서정적 상대는 매우 훈훈하다. 아직도 그에게는 고향이 기댈만한 의미인것 같다. 가락 능력이 있으므로 눈 번쩍이 끌릴 주제와 상을 붙들도록.
김김선의 『분수』는 사물의 의미를 캐어 고향감각에다 모아들인 3장이다. 그 때문에 의미의 변화감을 갖게 한다. 이런 방향으로 세련되게 나가도록.
유제성의 『귀향』은 초장을 통해서 시적 감수성이 남다르다는 느낌이지만 종장과 같은 직설적처리를 피하도록.
이종현의 『향수』는 지나치게 다루어서 오히려 막연해진 상태가 되었다. 초·중장이 그러하다. 언어는 언제나 유효 적절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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