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냐 한국이냐" 스위스계 기업 직원들 눈치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스위스계 콘텍트렌즈 제조회사 한국시바비젼은 최근 직원들 사이의 눈치 전쟁이 한창이다. 이 회사 직원 30명 중 스위스인은 3명. 파견 형식으로 오가는 스위스인은 매년 20여명에 달한다.

월드컵 본선에서 스위스와 한국이 같은 조에 편성될 때까지만 해도 한국인 직원과 스위스인 직원들은 "함께 16강에 오르자"며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24일 스위스전이 가까워지면서 분위기가 미묘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은 16강에 탈락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각자 자국을 응원하기 시작한 것. 마케팅팀 윤성희 과장은 "스위스 기업에 일하지만 축구경기만큼은 한국을 응원하게 된다"며 "스위스인 동료 앞에서는 너무 표내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런 긴장감을 오히려 월드컵 분위기를 돋우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내 게시판마다 점수표를 그려놓고 '스위스전 점수 맞추기 로또 행사'를 진행하는 것. 각국의 득점을 정확히 맞춘 직원은 특별 휴가를 받는다. 한국직원이면 스위스 여행을, 스위스 직원이면 한국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받는다.

결과는 대성공. 경기가 다가올수록 직원들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돌며 오히려 분위기는 '업'되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 온 재무팀 올리버 쉐츨레 씨는 "회의 시간에 서로 어느 팀이 이길 것이냐를 두고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게 됐다"며 "한국팀과 스위스팀이 비겨 나란히 16강에 들면 좋겠지만, 사실 난 스위스팀이 2대 1로 이길 것 같다"고 웃었다.

스위스계 식품기업인 네슬레도 직원들끼리 응원 팀이 나뉜 경우다. 이 회사엔 스위스계 영국인 데이비드 맥다니엘 씨를 포함해 4명의 유럽인이 근무한다. 회사 측은 직원들이 맘 놓고 편하게 응원할 수 있도록 한국인과 외국인을 위한 응원 장소를 별도로 마련했다. 한국 직원들은 회사 근처 작은 까페에서 단체 응원을 진행하고 스위스를 응원하는 직원들은 맥다니엘씨의 집에 모여 응원을 하기로 했다.

스위스계 에스프레소 커피기기 회사 유라는 스위스전을 앞두고 한국지사 직원들과 스위스 본사 직원들이 국제적인 내기를 했다. 이긴 팀이 상대팀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상대 국가로 출장을 와 술을 사기로 한 것. 주 성 영업부장은 "술을 사게 되더라도 한국 팀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2:1로 한국이 이기는 데 걸었다"며 웃었다. 이 회사는 토요일 직원들과 가족들이 모여 찜질방에서 단체 응원을 하기로 했다.

임미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