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광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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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월의 한 고비에서 우리는 다시 아픔을 어루만진다. 어느새 9년의 시간이 지나갔지만 그 아픔은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 있다. 아픔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아픔을 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픔을 잊지 못하고 있다.
아픔이 깊고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많은 시간이 지나도록 아픔을 잊게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가 아파해야 할 일은 바로 그것이다.
무엇이 아픔을 잊을 수 없게 했는가. 1980년 5월 18일 이후 광주에서 있었던 일은 그동안 「폭동」이라고 했다. 폭동이라면 당연히 폭도가 있어야 한다. 폭도라면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7, 8년을 두고 고집해온 논리요, 주장이었다. 광주의 아픔이 잊혀질 수가 있겠는가.
한때는 「사태」라는 말로 표현된 일도 있었다. 사태라면 우발적인 일이며, 도덕적인 명분도 약하다.
「의거」라는 말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결론은 쉽지 않았다.
광주의 슬픔은 해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더 깊어지고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우리의 아픔을 키워주었다.
이제 광주의 일은 결국 「민주화 운동」으로 그 호칭이나마 바뀌었다. 민주화 운동은 하루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또 얼마를 두고 계속해야 할 힘겨운 과제다. 그 점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은 우리 민족사의 중요한 페이지에 기록되어져야 한다.
언젠가 우리는 광주의 아픔을 잊을 수 있어야 한다. 영원한 망각용 위한 잊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잊음이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진상 규명의 노력은 할 만큼 했다. 이제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의 증언을 들을 차례만 남았다. 진상이 규명되면 새로운 진상에 맞는 명예회복이 있어야 한다. 그 명예는 동상이나 플래카드가 아닌 바로 역사에 기록될 명예다. 명예가 회복되면 그 명예에 걸 맞는 보상과 배상이 있어야 한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아픔은 그때 비로소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어서 빨리 와야 한다. 9년을 기다려온 일인데 지금 무슨 명분으로 또 지체한다는 말인가. 광주의 아픔을 잊게 되는 날, 우리는 해마다 5월이 되면 그 날을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날로 기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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