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시대에 맞는 체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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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이 미 통상법 301조의 우선협상대상국 지정에서 빠지게 됐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우선협상대상국 지정이 불가피하게 보인 것에 비하면 다행한일이다.
그러나 우선협상 대상국에서 제외된 것만으로 우리의 입장을 안도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통상여건에 맞는 우리의 대미무역 정책에 대한 깊은 연구가 이제부터 있어야 한다.
한미고위통상 실무회담결과 우선 협상대상국 지정에서 제외됐다해도 농산물 수입제한에 대한 우선협상관행 지정에 따른 문제는 남아있는 것이다.
우선협상대상국지정의 모면을 과소평가하지는 않는다. 지정으로 인한 유형무형, 직간접피해를 감안할 때 우선협상대상국 지정을 피할 수 있게되어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우선 협상국으로 지정되면 불공정무역 관행에 미 업계의 제소사태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추가 개방을 요구한 농산물에 관해서는 경제외적 요인까지 겹쳐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것을 간파하고 이를 담보로 미국은 실리를 취하는 협상을 벌인 것 같다.
한국의 농산물시장 개방은 어차피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에서 거론될 예정이어서 압력을 방을 판인데 미국은 구태여 한국의 국민감정까지 건드리며 강요할 필요를 덜 느꼈을 것이며 그 대신 나머지를 더 얻어내려 했을 것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한국은 당장 우선 협상국으로 지정된다 해도 최장 3년간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 기간 중 미국에서 주장하는 불공정무역 관행에 관해 협상하고 그 결과에 따라 관행을 시정하면 아무런 보복을 안 받는다. 물론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 받은 부담에서 협상에 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기는 할 것이다. 그렇다고 1차 적으로 우선 협상국 지정을 피해보려고 여타 분야에서 너무 양보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
농산물 추가개방을 허용치 않았지만 농산물 수입제한은 우선 협상관행으로 지정될 것이므로 어차피 미국과는 협상을 벌여야 되게끔 되어있다.
어쨌든 농산물은 추가개방까지 시간을 번 셈이지만 외국인투자제한과 특별법에 의한 수입제한 완화문제에서 미국의 요구를 거의 수용함으로써 우리경제에 개방충격이 닥치게 되었다. 물론 예외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우리산업과 기술수준에서 볼 때 외국인 투자를 전면 개방하거나 취약한 국내기술의 보호문제를 소홀히 생각할 수 없는데, 미국이 밀어붙여 우리의 개방스케줄을 앞당길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경제는 충격을 받게 되었다.
선진자본과 경영기업, 그리고 우리를 압도하는 기술과 신제품이 우리 앞에 거인처럼 다가서게 되었다.
어차피 무역흑자 국으로 떠맡는 부담이기는 하지만 국내시장 조기개방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일이 급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이 개도국쯤으로 느긋하게 생각하며 선진국들의 호의를 기대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경제가 완전에 가까운 대외개방체제가 되는 만큼 냉혹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을 찾도록 서둘러야 한다. 산업구조 조정·기술투자 확대·노사평화회복 등이 더욱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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