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환은행 매각 수사는 신중하고 조용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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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당시 외환은행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았다. 파산을 막으려면 매각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외자 유치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낮춘 것이나, 재경부와 금감위가 서로 예외 승인을 요청하는 공문을 주고받은 것은 책임 회피라는 의심을 살 대목이다. 아무리 합법적인 정책결정이라도 도덕적 책임까지 면하기는 어렵다. 검찰은 인수 자격이 불확실한 외국 자본에 헐값 매각하는 과정에서 고위 공무원과 경영진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는지 철저히 밝혀내야 할 것이다.

이번 감사원 감사를 통해 정책 결정 시스템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일개 재경부 국장이 자의적으로 지분 인수 조건을 결정하는 등 월권행위가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감사원이 정책결정의 투명성에 집착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당시 외환은행 정상화를 위해선 효율적인 정책 판단이 시급하게 요구되던 상황이었다. 이제 와서 투명성만 문제 삼으면 어느 공무원이 복잡한 경제 현안을 앞장서 풀어나갈지 걱정스럽다.

강도 높은 수사를 주문하는 감사원의 조치도 온당한지 따져볼 대목이다. 과도한 매각 차익에 대한 국민의 정서적 반감에 과민 반응하는 게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추가로 론스타의 명백한 불법행위가 밝혀지면 매각을 원상태로 돌리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마구 헤집어 놓았다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돌아올 실익은 없으면서 외국 자본의 한국에 대한 반감만 초래할 수 있다. 앞으로 검찰 수사는 신중하고 조용하게 진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