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가시 돋힌(?) 말은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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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주변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살다 보면 강한 어조로 거친 표현을 써 가며 감정을 극대화시켜 상대가 내 말에 어서 순응하기를 바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급적 부드러운 목소리와 정제된 표현으로 듣는 이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나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즉 ‘가시 돋힌 말 하지 않기’를 새해 목표로 세운 셈이다. 거창한 목표라기보다 새해의 바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표현이 있다. ‘가시 돋히다’는 말이다.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가시 돋치다’고 해야 바르다.

말 속에 상대를 공격하는 의도나 불만 등이 들어 있을 때 흔히 “가시 돋히다”고 표현하곤 한다. 속에 생긴 것이 겉으로 나오거나 나타난다는 의미를 지닌 ‘돋다’에 접사 ‘-히-’를 붙여 피동 표현을 만든 것이 ‘돋히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먹다’에 ‘-히-’를 붙여 ‘먹히다’, ‘붙잡다’에 ‘-히-’를 붙여 ‘붙잡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돋히다’도 맞는 말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돋다’는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타동사가 아니라 동사가 나타내는 작용이 주어에만 미치는 자동사이므로 ‘-히-’를 붙여 피동 표현으로 만들 수 없다.

‘돋치다’는 ‘돋다’에 ‘강조’의 뜻을 더하는 접사 ‘-치-’를 붙여 만든 단어다. ‘밀다’에 ‘-치-’를 붙여 ‘밀치다’, ‘넘다’에 ‘-치-’를 붙여 ‘넘치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귀가 움직이는 토끼 모자가 유행하며 날개 돋힌 듯 팔렸다”에서와 같이 “날개 돋히다”는 표현도 흔히 사용되고 있는데 이 역시 ‘돋치다’로 고쳐야 한다.

정리하면 ‘돋다’는 피동 표현으로 만들 수 없는 말이므로 ‘돋히다’가 성립하지 않는다. 즉 ‘돋히다’는 없는 말이므로 ‘돋치다’로 바꿔 써야 한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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