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는 하면서 협상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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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환자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만 더 이상의 인내는 오히려 참된 국민건강의 의무를 저버릴 뿐입니다』
『약품납부업자에게 4O%에 달하는 할인을 요구하면서 돈없는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는 등 부당의료행위를 일삼고 액수미상의 정치헌금을 하는가하면 부동산업까지 손을 뻗치고서도 환자를 볼모로 오히려 노조를 협박하는 병원자본가는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되어야 합니다』
22일 오후6시 한양대병원 1층로비 병원노조 비상총회장.
24일부터 의료직을 포함한 전 노조원 1천4백여명이 집단 연월차휴가를 낸 뒤 농성에 들어갈 계획을 세워놓고 총회투쟁에 참석, 병원업무를 전면 마비시킬 것인가를 논의하는 진지한 토론의 장이 열리고 있었다.
병원측의 치밀한 대노조공세와 파다하게 퍼진 공권력개입설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투쟁 방향이 과연 무엇인가를 머리 맞대고 의논해 보는 이날의 비상총회에서 전면 태업 강행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노조 사무장 장영주씨 (25·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의 투쟁이 환자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이는 오히려 병원측이 학수고대하는 바입니다. 극한적인 파업투쟁에만은 이르지 않도록 끝까지 노력합시다』
조용하고도 깊이 있게 파고드는 장씨의 논리에 대다수 노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됐고 마침내 전면태업에서 비의료직 노조원들만이, 그것도 돌아가면서 농성에 참여해 병원진료 업무를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파업만은 막아야 합니다. 우리들에겐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할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병원측도 같은 생각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랜 농성으로 목이 쉬어버린 차수련 노조위원장(30·여)의 결연한 음성이 농성장 안에 조용한 파문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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