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사건」은 자?을 요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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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해 재선거에서 드러난 후보매수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일과성사건이 아니라 우리 정치권 체질의 발로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매수하고 매수당한 특정인 몇 사람을 조치하고 관련 정당의 사과와 당직개편 정도로 세월이 가면 잊혀질 사건이 아니다. 이런 비슷한 사건을 과거에도 흔히 있게 했고 앞으로도 저지를 개연성을 다분히 안고 있는 우리 보수정당들의 체질을 바꾸고 정화하는 문체가 이제 치열하게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으면 안됨을 이번 사건은 말해주고 있다.
후보매수사건에서 보게 되는 정치의 도덕성 상실·부패·타락·저질·공공연한 거짓말 등의 문제는 실상 기존 정당들에 내재한 만성적 현상이었다. 과거의 선거판과 공천과정이나 전당대회·당직개편·당내권력투쟁 등을 돌이켜보면 돈거래와 스캔들, 권모술수와 막후거래,모략·모함 등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국민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번 동해선거에서 탈법·불법운동이 판을 치고 타락현상이 극심했다고 떠들썩했지만 이런 현상이 이번에 비로소 나타난 것도 아니다. 바로 1노3김이 싸운 재작년 대통령선거는 과연 법대로만 치러졌으며 작년 4·26총선은 탈법·타락이 판을 치지 않았던가.
선관위가 법에 따라 정한 선거운동경비가 지켜진 선거의 예가 단 한번이라도 있었는지 의문이다. 선거운동과 정치자금에 관한 한 엄격히 따지자면 현재의 원내4당과 그 정치인들은 대소간의 정도 차이는 있을 망정 모조리 범법자요 범법집단임은 스스로도 인정할 것이다.
후보매수만 해도 과거 문제만 되지 않았을 뿐 심심찮게 있었던 일이 아닌가. 경쟁후보의 표를 갉아먹도록 하기 위해 뒷돈을 대어 군소후보의 출마를 유도하는 일은 흔히 보던 선거전략이었고 『××후보를 깨줄테니까 얼마를 내라』는 식의 「사업성출마자」나 선거브로커가 어디 한둘이었던가. 3선개헌과정의 야당의원 변절도. 다른 예가 아니다.
과거 치열한 당권경쟁을 벌인 야당의 전당대회과정에서 계파끼리의 무성했던 뒷거래와 대의원확보를 둘러싼 잡음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일이다. 전국구헌금을 둘러싼 추문, 공천과 당직을 따기 위한 당간부나 보스에의 뒷돈대기… 이런 현상은 정계의 공공연한 내막의 일부다.
이런 정치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20년, 30년의 경력을 쌓은 정치인들이 오늘의 각정당을 이끌고 있거나 구성하고 있다. 그런 정치판의 의식과 경험과 체질이 민주화시대를 맞았다고 하여 하루 아침에 변할 리가 없다. 이번 동해 후보매수사건은 매우 극적으로 변명할 여지없이 이런 체질을 국민에게 들켜버린 경우다.
앞으로 같은 사람들이 같은 체질로 지자제선거를 한다면 같은 일이 또 되풀이 안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보는 눈만 없다면, 들키지만 않는다면 비슷한 불법과 비슷한 타락이 얼마든지 벌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체질인 이상 다른 작품이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기존 정당들의 체질개선과 정치방식의 쇄신뿐이며 그런 운동이 정계에서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
이제 진면목이 여지없이 들켜버렸고 신용이 땅에 떨어진 이상 스스로가 다른 체질이 되는 자기정화와 자기갱신의 자구노력이 각 정당 내부에서 나와야 하고 동해판 타락과 매수와 같은 정치의 막을 내릴 제도적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우선 무엇보다도 각 정당내부에서 새로운 지도력의 모색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야당의 경우 오랜 독재와의 힘겨운 투쟁을 위해 당이 1인구심의 단단한 형태를 취하는 것이 불가피했지만 이제 민주화시대에 들어선 이상 사당성을 청산할 때가 됐다고 본다.
당의 결정이 1인의 결심으로 이뤄지는 「안방정치」, 측근의 당직과점, 정치자금의 1인집중과 음성적 조달 및 지출, 만성적 집권경쟁의식에 의한 정국의 왜곡…등 1인의존정당의 폐단은 이제 감출 길이 없게 됐다.
민주당이 보다 공식적으로 운영되고 결정과정이 보다 개방되어 다수 간부의 참여가 가능했던들 후보매수와 같은 졸수는 막아졌을 지 모른다.
이제 3야당은 물론 민정당도 당내 민주주의와 세대교체, 지도력의 분산과 그 행사방법의 변화를 모색해야 하리라고 본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체질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다음으로 정당 부패요소의 청산이다. 각 정당 모두 돈에 대한 잡음이 많고 특히 선거와 공천에서 그런 현상이 심하다. 당운영의 공식화·근대화로 이런 요소를 털어버리지 않으면 체질개선은 요원하다.
셋째, 정치자금의 양성화, 의원윤리규정의 강화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하겠다. 현재 돈에 관한 정치는 모조리 음성화돼 있는데 그 조달과 지출이 최대한 검증이 가능하도록 장박화하고 공개화하도록 법도 고치고 처벌규정도 강화해야 한다.
동해 후보매수사건은 우리 정치권의 체질을 극적으로 드러내면서 구정치의 낙조와 새 정치의 도래가 불가피함을 보여주었다. 기존 정당들이 자정을 통한 자기갱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않으면 어느덧 지는 놀처럼 스러질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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