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인간의 자율성은 현실의 이루어진 모든 것만을 수동적으로 향수하지 않고 좀더 다른 미래를 지향하려 한다. 사회는 이러한 인간의 자율성에 의해 변화·발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단적인 몇몇의 모험적인 시도로부터 기존의 것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문화란 결국 기존의 규범을 해체시키려는 위협세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힘과 미래지향적인 인간의 자율성이 서로 투쟁하면서 만들어낸 새로운 규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규범이라는 문화가 통제수단이 되어 어떤 집단에 의해 고도의 기능성을 갖고 내밀하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다면 그 문화는 자율성을 잃고 왜곡된다.
이렇게 왜곡된 문화는 특정한 이익집단을 위한다는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이 될 뿐이고 일반에는 대리적이고 쾌락적인 만족만을 주는 조악한 문화풍토를 형성한다. 이러한 문화는 비창조적인 사회의식과 관념을 형성케 된다.
창조적인 지성은 이러한 보수성향이 강한, 왜곡되고 굴절된, 고정된 전체성이라고 하는 기존질서로부터 인간의 의식을 고양시켜 추구해나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암시하여 이를 달성키 위한 효율적인 운동을 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사회의 변화속도가 늘 지지부진하게 마련이어서 앞선 의식을 가진 사람의 감수성과 사고는 늘 현실에 되잡히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상당수의 창조적 지성은 자칫 급진적 성향을 띠게 된다.
즉 그들의 뼈아픈 좌절감은 자칫 충동적인 혁명이라는 방법을 빌리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이란 늘 기성 질서를 벗어난 것이기에 이를 일반에 인식시키려면 새로운 표현방법까지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늘 파괴가 뒤따르는 혁명이 아닌 진화하는 문화, 즉 창조적인 문화를 이끄는 사람들은 그를 일반에 이해시키는 수단과 기술과 기존의 것과 자립을 가능케 하는 융통성을 아울러 체득하여야 한다.
그들은 논리적 정연성을 갖고 자신의 새로운 질서와 창의의 산물을 고집불통인 일반대중을 상대로 열심히 알리고 그들 중에서 동조자를 찾고 지지기반을 다져 가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또 기존 문화유지 세력은 마음을 열고 새것을 받아 자신을 혁신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뼈를 깍는 듯한 인내와 각고의 노력과 시간의 투자 없이는 새로운 문화는 창조되지 않는다. 있다면 난무하는 혁명적인 구호와 선전, 그리고 퇴폐적인 문화일 뿐이다.
작금에 나타나고 있는 우리사회의 향략적이고 퇴페적이며 부도덕한 문화는 그 어느 내밀한 곳에서 진실의 은폐를 위해 조성되는 것은 아닌가.
또 문화 각 부문에 일고 있는 가위 혁명적이라 할 여러 현상은 그 어떤 이의 좌절감에서 오는 왜곡된 충동에서 기인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사회의 창조적 문화풍토 조성은 이를 꿰뚫어 진단·처방할 수 있는 직관력과 문화를 긴 눈으로 볼 줄 아는 사람들의 양식에 의해서만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장의근·무용 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