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한 공기, 더러운 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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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간평가와 노사분규 등 눈앞의 현실에 빠져있는 동안 1천만 시민이 숨쉬는 공기와 마셔야할 물이 악화일로의 오염상태로 치닫고 있다.
지난겨울 3개월동안 환경청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서울의 대기오염이 환경기준치의 평균 2배 이상을 상회하고 있고, 공장과 교통 밀집지역인 영등포 문래동의 경우 아황산가스 농도가 4배를 초과하고 있다.
한강상류의 식수원인 의암호와 팔당호의수질오염도도 연평균허용치의 50%내지 90%를 넘고 있고 노량진 부근의 수질오염도 지난 1월과 비교해 더욱 나빠졌다.
집중 난방기간인 겨울철엔 대기오염도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지만 여름 행악철도 아닌 겨울철에 식수원의 오염도가 달마다 높아진다는 현상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눈앞의 이익과 당장의 현실에만 골몰하는 지난 3개월동안 서울의 공기와 물이 이처럼 혼탁해지고 썩어들어 갔다는 사실에 대해 정부는 깊은 반성과 강력한 개선대책의 연구가 있어야한다. 올림픽이 열렸던 1개월동안 강력한 홍보와 집중 단속으로 환경기준치 이하를 밑돈 경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난 3개월동안 이처럼 급속히 환경오염도가 높아진 까닭은 대기오염의 주범인 아황산가스를 무차별 방출시킨 도심의 호텔과 대형빌딩들, 중금속 폐기물을 무작정 방류한 공해업소들에 대해 아무런 단속의 손길을 뻗치지 않았거나 뻗칠 능력이 없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50억원짜리 분수를 한강에 설치하겠다는 전시행정이나, 급기야 벌이는 일시적 단속만으로는 근본적인 환경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으로 대별되는 우리의 환경권·생존권을 보사부 외청의 하나인, 연간예산 7백억원밖에 안 되는 환경청에 맡겨둔채 오염의 심각성을 밤낮 되뇌봤자 쇠귀에 경 읽는 꼴밖에 될게 없다. 이름만 그럴듯한 환경보존위원회가 부총리 직속 기구로 설치만 돼있는 채 그 흔해 빠진 회의 한번 개최한 적이 없으니 공해와 환경파괴에 대한 정부의 무성의한 자세가 그대로 노출된다.
산업화 사회의 특징은 노사문제와 공해·환경파괴로 나타난다. 시대적 요청이 절박함에 따라 노동청이 노동부로 승격되어야했듯이 부처간에 산재해 있는 환경업무를 통괄하며 보다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장기적으로 환경문제를 대처해 나가야할 기구설립을 검토할 때에 이르렀다.
자연환경에 속하는 생태계의 보전은 내무부에 속해있고 산림보호는 산림청에, 문화재로 지정된 동식물보호는 문공부에, 강과 하천 등 국토보전은 건설부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형편에서 환경청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오염경보 통보 밖에 없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아황산가스의 발생 주원인은 일반 가정의 연탄사용 때문이다. 영세서민의 난방연료를 환경청 능력만으로 대체할 수 있겠는가. 유가는 인하해놓고 대형화물트럭과 시내버스의 경유사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환경감시모니터」제도니, 「대기오염경보체제」니 듣기에만 그럴싸한 제도를 남발한 채 손발 없는 환경청이 뭘 할 수 있을 것인가.
대기오염으로 전 지구가 「온실효과」를 가속화하고 있고 인류의 사활이 걸려있음을 세계가 우려하고 그 대책을 연구하는데 진력하고 있는 형편에 1천만 시민이 24시간 마셔야할 공기와 물이 썩어가고 있는데도 대책위원회 한번 열지 않는 정부의 무감각·무신경은 무엇을 뜻하는가.
대통령직속의 환경문제 기구를 설치해 부처간의 유기적 연구·조정기능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행개위에서 이미 논의된바 있는 환경청의 부·처로의 승격 확대개편을 통해 우리의 환경권과 자손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강력한 부서로서의 기능을 관장해야 한다. 목전의 문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의 개진이 필요함을 지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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