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김영남 모자 상봉 왜 허용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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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를 시인.사과했으나 당시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으로 내세운 김철준이 북한인이 아닌 납치 한국인으로 드러났다. 그런 만큼 김 위원장에게 더 이상 비난의 불똥이 튀지 않도록 모자 상봉이란 수습책을 내놓았을 수 있다.

북한으로선 한.일 양국 모두에서 김씨의 딸 혜경양과 어머니 최계월씨의 유전자 조사가 일치한다는 결론을 낸 것을 부담스러워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예 "김영남은 북쪽에 있다"고 고백한 뒤 상봉을 허용해 국제사회의 인권 압박을 피해 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7일 이산가족 생사확인 통보 땐 이름을 빼놓았다가 8일 관영 매체를 통해 깜짝 공개한 것도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30년 가까이 북한 체제에 길들여진 김씨를 상봉장에 내세워도 문제가 없을 것이란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대남공작과 일본인 납치 실상을 상세히 알고 있을 김씨를 북한이 자유롭게 내놓을 리는 없다. 이 때문에 상봉을 넘어 송환 등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김씨와 결혼한 메구미의 '사망 사실'을 김씨의 입을 통해 전달해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속셈도 깔린 것 같다. 북한은 메구미가 1994년 자살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가족은 믿지 않고 있다.

한편 정부는 4월 평양 장관급회담 때 김씨의 생사 확인을 요청한 이후 상봉에 공을 들여온 까닭에 반기는 표정이다. 지난달 25일 열차 시험운행 무산으로 북한에 뒤통수 맞았던 분위기를 반전시킬 호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복병도 있다. 북한이 상봉 허용을 통보하면서 "상봉을 앞두고 난관을 조성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토를 달았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인권단체나 언론의 보도를 문제 삼아 상봉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는 엄포다.

이번 상봉을 계기로 480여 명의 다른 납북자와 국군포로 가족들의 상봉 요구가 봇물을 이루는 상황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일본과 국제사회에서 제기한 메구미를 비롯한 납북 일본인의 실태 공개와 외국인 납치의혹 규명 여론을 정부가 마냥 외면하기도 어렵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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