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문화cafe] 언제는 삶이 녹록하더냐 … 담담히 읊은 일상의 독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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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해의 그림일기 - 유미옥 전

13일까지 서울 관훈동 포토하우스 02-734-7555 / 15~21일 서울 역삼동 갤러리 위드 화이트

어떤 한낮 속에 서있다 - 김미혜 전

16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눈 02-747-7277

기록의 객관성을 놓고 보면 그림은 사진에 뒤진다. 그렇다고 사진이 늘 객관적 기록인 것은 아니다. 사진에 숨어있는 주관성은 때로 그림을 뛰어넘는다. 거꾸로 말하면 그림이 더 차가운 객관성을 지킬 때도 있다. 두 여성화가 유미옥씨와 김미혜씨가 보여주는 것도 냉정한 자기 객관화다. 내밀한 자기 얘기를 그림으로 털어놓으면서도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다.

유미옥씨는 자폐아를 둔 어머니다. "늘 꿈꾸듯 몽롱한 아이를 안고" 특수교육을 받으러 온갖 곳을 헤매던 세월 속에 그는 제 목숨 같던 그림을 잊었다. 아이를 위해 바닷가 시골 마을에 살며 자연 속에 묻힌 지 여러 해. 뿌옇던 아이의 눈빛이 맑게 개어가는 기적 속에서 그는 접었던 그림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림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흰 화폭 앞에 앉은 그는 자신을 치유하는 순수한 방편으로 붓을 잡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바다에 흰 구름 하나 띄워놓고 '구름 따라 구름 되고', 사막 같은 세상에 날리는 흰 손수건은 '그리움'이다. 아이를 안거나 업은 화가의 모습이 민들레 같다.

김미혜씨는 '어떤 한낮 속에 서있는' 듯한 일상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작가는 "길을 유유히 걷다가 거대한 무엇인가에 맞닥뜨리는 순간, 깊은 곳에서 울렁거리는 욕망에 대한 은유"라고 썼다. 쨍한 여름날, 길고 뜨거운 햇볕 내리쬐는 한낮을 지루하고 고통스럽게 견뎌야만 하는 우리의 삶을 그는 초현실의 공간으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에는 눈물 없는 인간들이 침묵에 빠져 있다. 가도 가도 시대정신이 보이지 않는 우리 현실을 그는 한낮을 견디는 침묵으로 증언한다. 적막하면서도 아우성치고 있는 듯한 인간상을 작가는 스스로 "황폐한 서정성"이라 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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