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기본'도 못 갖춘 경북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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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3일 경북지방경찰청엔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지난 18일 상주에서 호송 중 도주했던 절도 피고인 강모(23)씨를 검거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즉시 검거 경위가 담긴 상세한 자료도 배포했다. 간부들의 얼굴도 환하게 펴졌다.

하지만 경찰의 성공적인 검거작전을 뒤집어 보면 부실했던 치안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강씨가 도주한 직후 경찰은 상주시 외곽을 차단했다. 길목 19군데에 80명의 경찰관을 동원해 통행 차량을 일일이 검문했다.

하지만 강씨는 다음날 밤 11시쯤 국도를 통해 유유히 상주시내를 빠져 나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김모(25)씨의 차량을 통해서다. 그는 뒷자리에서 포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국도변에서 검문하던 경찰관들도 포대를 확인하진 않았다. 강씨는 대구지법 상주지원에서 절도죄로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좀 더 검문을 철저하게 했더라면…"이라며 아쉬워 했다.

강씨는 도주 직후 현장에서 1.5㎞ 가량 떨어진 냉림동의 한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고 오후 3시쯤까지 숨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선배를 만나 술을 마시고 잠도 자는 등 숙식을 해결했다. 연고지 주변 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도주 과정을 보면 말문이 막힐 정도다. 그는 당일 대구지법 상주지원에서 재판을 받은 후 법원 피고인 대기실에서 "손목이 아프다"며 수갑을 느슨하게 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담당 경찰관은 손이 빠질 정도로 풀어주고 말았다.

강씨는 유치장으로 돌아가던 도중 신호 대기중인 호송버스의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달아났다. 호송버스 안에는 경찰관 28명이 그를 지키고 있었다. 경찰은 "수갑이 죄어 조금만 풀어 준다는 것이 손이 빠질 정도가 됐다"는 궁색한 답변만 하고 있다. 경찰은 검거 때와 달리 당일 오후 4시가 넘도록 입을 닫고 있다가 기자들이 취재를 하자 도주 사실을 공개했다.

'기본'이 안돼 있으면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홍권삼 전국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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