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뉴스] 잊을 만 하면 … 또 수뢰 … 당혹스러운 공정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검찰 수사 결과 L씨는 중소 토건업체 대표 정모씨에게서 "하도급 공사를 딸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현금 2000만원과 그랜저XG 승용차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L씨는 하도급 관련 조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검찰은 L씨가 정씨 회사에 공사를 주도록 대형 건설사 하도급 담당자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그 회사의 규정에 따르면 5000만원 이상 공사는 반드시 입찰을 거치도록 돼 있는데 이 규정을 피하기 위해 2000만~4000만원 단위의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주도록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L씨는 "돈을 빌렸다 돌려준 것에 불과하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앞서 이 전 위원장의 경우 현직에 있던 2002년 7월 SK그룹이 한 사찰에 10억원을 시주하도록 요구한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습니다. 당시 SK그룹은 KT 지분 매입과 관련해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두 사건은 직위나 금품 액수에선 차이가 나지만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직무와 관련한 영향력으로 기업에 부당한 압력을 넣은 것입니다. 인허가를 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는 통상적인 공무원 뇌물수수와 다른 양태입니다. 공정위가 '경제검찰'이라는 별명만큼이나 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공정위는 시장경제를 축구경기에 비유하면서 자신을 심판, 기업을 선수라고 말하곤 합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선수들이 규칙을 잘 지키도록 하는 게 심판의 역할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심판이 선수 또는 관중의 청탁을 받고 다른 선수의 플레이에 간섭한다면 이는 일종의 '승부 조작'이 아닐까요. 공정위는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부 사례에 의해 심판의 신뢰가 흔들리면 감독이나 선수들도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김원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