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연금개혁 이제부터 시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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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국민연금개혁 구상이 드러났다. 45%의 저소득 노인에게 월 8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고, 보험료를 12~13%로 올리되 노후 연금액(소득대체율)은 40%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유 장관은 두 마리의 토끼를 노리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을 내세워 한나라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고, 보험료 인상률 목표를 종전의 15.9%에서 12~13% 선으로 낮춰 국민 반발을 줄이려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인들의 눈치 보기, 정부의 의지 부족 등으로 3년째 연금개혁이 표류하면서 하루에 800억원의 잠재부채가 쌓이고 있다. 정부는 보험료를 9%에서 2030년까지 15.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생애 평균소득의 60%에서 50%로 낮춰(2003년 개정안) 재정 고갈을 막자고 했지만 한나라당은 모든 노인에게 최고 월 30만원을 주는 기초연금제를 도입하자고 맞서 왔다.

유 장관의 구상은 이런 교착상태를 풀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만하다. 연금개혁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03년 개정안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차선책을 찾는 게 순리다. 유 장관의 기초노령연금은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제를 상당 부분 본뜬 것이다.

그러나 유 장관의 구상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추는 게 합당한지 의문이 든다. 50%로 낮추자는 2003년 개정안도 '용돈연금'이라고 비판받았는데 더 낮춘다면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연금제도의 취지가 퇴색될 것이다.

유 장관은 퇴직연금 수령자 증가를 들어 별문제가 없다고 한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2030년 퇴직연금 수령자는 노인의 5.4%, 개인연금은 10.4%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저것 다 합해도 노후 소득이 얼마 되지 않는다. 차라리 보험료를 더 올리더라도 소득대체율은 내리지 않는 게 낫다.

도덕적 해이도 걱정이다. 보험료를 안 내도 정부가 세금에서 월 8만원을 주는데 누가 내려 하겠는가. 성실하게 보험료를 내는 사람만 손해 볼 수 있다. 또 기초노령연금은 첫해에 2조원이 들고 계속 늘어날 텐데 재정 여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민연금 개혁의 전제는 혈세가 빨려 들어가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곧 같은 처지에 빠질 사학연금의 개혁이다. 유 장관은 5일 TV 토론에서 연말까지 개선안을 만들겠다고 했으니 이른 시일 내에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한나라당도 이제는 기초연금제에서 물러나야 한다. 사각지대 해소에 기초연금제가 최고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첫해에 9조원, 2030년에 185조원이 들어가는데 이 돈을 마련할 방도가 있는가. 그러면서 한편에서는 감세(減稅)를 외치고 있으니 정략적 노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연금개혁은 올해가 마지막 기회이다. 내년에는 대선, 2008년에는 총선이 이어진다. 출산율은 1.08로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이다. 여야는 하루빨리 지방선거 분위기를 털고 연금개혁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