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일보를읽고

남북 철도 시험운행 취소 "이산가족은 속 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백지수표를 줄 테니 오늘부터 당장 가족들과 헤어져 일절 연락조차 못하게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당사자라면 "무슨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느냐"며 버럭 화를 낼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족이라는 존재는 세상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엔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생사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 조사 집계에 따르면 남북 분단으로 가족을 잃은 이산가족의 수는 남한에만 71만6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이산가족 1세대의 경우 대부분 고령자로 매년 5000명 가까이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이어진 이산가족 특별상봉은 남북의 수많은 이산가족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돼 왔다. 짧은 시간이나마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혈육의 정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혈육을 만나보지 못해 애태우는 이산가족은 아직도 많다. 이것이 남북 교류를 위해 양측의 정부와 민간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지난달 25일로 예정됐던 경의선.동해선 철도 시범운행 행사가 북측의 거부로 돌연 취소됐다. 이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6월 방북과 6.15 남북 공동 행사, 이산가족 특별상봉 등 남북 교류 관련 중요 일정들이 줄줄이 차질을 빚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부디 애끓는 이산가족들의 심경을 고려해 남북 교류의 끈이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정효준 서울 성북구 정릉3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