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교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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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외국어 붐을 타고 속성 영어학원 같은 곳엘 가면 정말 속성 말을 가르쳐준다. 『와라…』『하라…』『가라…』 등이 대표적인 예다. 영어의 『what are...』『had a…』『gut up…』과 같은 말을 그렇게 발음한다. 실제로 그러는 미국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병원이라는 뜻의 호스피틀도 멀쩡한 미국사람들이 『하스피라』라고 한다. 캐피틀도 마찬가지다. 굿 이브닝이라는 인사말이 『구 리브닝』이라는 말로도 통한다. 심한 경우는 『우즈라…』라는 말도 있다. 미국사람들은 그 말이 『would you like…』라고 알아듣는다.
그러나 상대가 알아듣는다고 다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허물없는 사이거나 농담이라면 또 몰라도 아무데서나 그렇게 지껄일 수는 없다. 영어를 배워서 사용하는 외국인일수록 그 말엔 품위가 있어야 한다. 한국말을 막 배운 외국사람이 말끝마다 『웃기네』 『좋아하네』와 같은 말을 구사한다면 아무리 무관한 사이라도 듣기 좋겠는가.
우리 나라는 특히 미국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GI 영어에 접할 기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월남전쟁을 주제로 삼은 미국 영화 『플래툰』을 보면 미군범사들은 식상할 정도로 속어만 쓰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헤이』는 그런 말 가운데 하나다. 물론 사전에 등록되어 있는 말이긴 하지만 품위하고는 거리가 먼 표현이다. 우리는 외국인과 대화하면서 『으흥, 으흥』하는 사람들도 때때로 본다. 짐승소리 같은 그 발음이 상대의 비위를 맞춘 제스처 인줄은 알지만 역시 경박해 보인다.
외국사람과 대화하면서 밑도 끝도 없이 『오호, 예스』를 연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식사했느냐고 물어도 『오호, 예스』 어디 아프냐고 해도 『오호, 예스』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오, 야』가 된다. 요즘 어느 국회의원이 교황을 만난 자리에서 『헤이』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주간지의 가십이 되었다. 우리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만의 하나 사실이라면 정말 얼굴이 뜨거워진다. 교황의 권위에 대항해 그런 말을 했다면 담 크다는 소리라도 들었을 텐데, 「알현」하는 자리에서 그랬다면 실수임에 틀림없다. 외국어에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입다물고 있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아니면 만나는 사람의 존칭쯤은 알아두는 것이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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