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율·개방 뒤의 혼란대처〃어정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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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공화국의 한해가 지나가고 있다. 긴장과 기대 속에서 너나없이 걱정스럽게 지켜본 한해였지만 혼돈과 불안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고 앞날의 전망도 불투명한 어수선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1년 동안에 커다란 사회적 변화가 있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뭔가 방향감각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확약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노 정권은 1년 동안 사회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가시적인 것을 들어보면 언론·출판 자유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외과외가 부분적으로 허용되고 교육에 대한 요구를 현실화하려 하고있다. 노사간 갈등을 가급적 직장 단위의 수준에서 자율적인 해결을 종용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이나 사회정화운동 같은 정부차원의 운동을 지양하려 한다.
아마 이런 것들을 주요 업적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많은 문제점이 노정되고 있는 것이다. 치안은 말이 아니고 각종범죄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어 주민들은 자기방어를 스스로 감당해야 할 정도다. 아파트값은 폭발적으로 치솟고 주택에 대한 서민의 소박한 기대조차 충족시키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과외열기는 가계지출에 있어 과중한 교육투자를 강요하고 있다.
물가는 치솟고 있고 안정된 중산층마저 앞날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노동현장에서는 어디나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고 농민들도 의식화되어 항의의 깃발을 들고 있으며 교육자나 공무원도 단결권과 쟁의권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가 조용해야 사회도 조용해진다는 논리가 있다. 우리의 경우 이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정치는 시끄러워도 사회는 조용할 때 민주화가 달성되는 것이다.
6공화국은 국민들의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탄생된 체제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를 놓고 보면 국민들은 민주화의 작업을 노 정권에 일임해본 것이다. 노 대통령도 권위주의의 청산을 최우선 과제로 자임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치적인 흥정에만 시종 끌려 다니고 진정, 해야 할 사회의 민주화에는 매우 인색한 시책을 펴왔다. 국민을 위한 노 정권의 정치철학이 무엇인가 알 길이 없다.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정치적 구호를 내걸었지만 보통사람들이 모두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기는커녕 현 상태의 유지에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도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고 있지 않다. 큰소리치는 사람은 큰소리쳐서는 안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힘이 있다는 것을 물리적으로 과시하는 사람만이 대접받는 사회인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은 사회혼란을 방치해 두었다가 일시에 충격적인 방법을 쓰려고 하지 않는가 하고 의심하기조차 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통제의 그늘아래서 커 온 나라다. 그것도 물리적 강제력이 나라를 지배해 왔다. 민주화라는 것은 자생적인 힘에 의해 사회적 통합을 이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을 자생적인 힘에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민주적인 습성이 축적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치가 권력을 독점해서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도의 정치적 지도력이 요구되고 있다. 여소야대라는 국회는 따지고 보면 정치적 권력의 독주를 막기 위한 방파제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국민이 노 정권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과도적 단계의 청산작업인 것이다.
모든 통제를 무조건 풀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정권유지에 도움이 되거나 해롭지 않은 것만 풀어야 한다는 것도 잘못이다.
자생적인 힘을 기르고 보호한다는 일관된 원칙이 서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자율성, 교육의 자율성, 지역사회의 자율성 등은 매우 시급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은 형식적인 자율성조차 부여하려 하지 않고 있다. 정권유지에 도움이 안될지라도 자율성의 선택은 국민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사회를 책임지는 것은 정부와 더불어 언론·종교·교육 등의 자율적인 조직이어야 하고 노동조합·농민단체기타사회단체 등이 민주화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에 중요한 것은 갈등해소의 작업이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갈등이 존재한다.5공 비리·언론통폐합·광주항쟁 등의 국회특위활동도 결국 갈등해소의 제도적 해결의 모색을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혁명적 방법을 피할 수 있는 구제책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해결은 갈등의 당사자들을 어느 만큼 폭넓게 포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계층 간 불만·지역적 불만에다가 이념적 불만이 있다.
이런 불만은 달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일시적인 진압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함께 참여하는 공감대를 찾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좌든, 우든 동질적인 사회적 유대가 있으면 내부적 대립은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못 가진 사람의 한, 푸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한, 그리고 자기 목소리가 무시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한을 공동의 염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정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
노 정권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또 싫어도 해야할 일이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파를 위한 정치로 기울어 가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의 충성스러운 부하마저도 이탈하고 있는듯 하다. 지지 층의 확대가 필요할 터인데도 기존의 지지 층마저 잃고 있다면 지나친 혹평일까.
정치를 의해 한 것이 없더라도 사회를 위해 한 것이 있다면 새로운 지지 층을 모을 수 있다고 본다. 서울올림픽의 자랑을 왜 다른 영역에 확산하지 못하는가가 안타깝다. 부대의 평온이 아니라 후대의 자랑을 남기는 일을 노 대통령에게 기대해 보고싶다. 【고영복(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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