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의 「북방 새치기론」|이년홍<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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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권의 북방 외교가 몸살을 앓고 있다. 공화당을 제외한 민정·평민·민주당 지도자들이 다투어 공산권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공식외교가 할 수 없는 것을 정당 차원에서 보완하는 것이 정당외교의 장점이자 기능이다.
야당 지도자로서 처음으로 공산권에 입국한 김대중 총재의 헝가리 방문이나 일본 사회당의 대한반도정책을 수정하는데 일조한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방일은 우리 정당외교에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됐음에 틀림없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정당들도 시야를 외부로, 그것도 우리와는 관계가 생소한 공산권 국가들에 돌리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고 권장할 만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 가까이서 냉정하게 정당 외교의 허실을 들여다보면 그토록 바람직해 보이는 정치권외교가 그토록 조마조마해 보일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단적인 예가 민정·평민·민주당의 대표와 총재간에 벌이는 모스크바 방문경쟁이다.
소련 방문은 김 평민 총재가 일찌감치 점찍고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터에 박준규 민정당 대표위원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소련방문 계획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그러자 유럽을 순방중인 김 평민 총재가 참모들과 회의 끝에 수행중인 유인학 의원을 통해 여야정당들의 줄 이은 방소 계획에 유감을 표하고 그렇다면 자신의 소련방문 연기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수행중인 측근들은 심지어 새치기 외교·덤핑외교의 작태라고 상대측을 몰아세우기까지 했다.
민정·민주당 측 속사정을 알아봐야 새치기인지 덤핑인지 드러나겠지만 아뭏든 김총재 측의 설명은 정치권의 무분별한 북방 구걸외교(?) 를 꼬집은 경구라 아니할 수 없다.
또 김총재의 헝가리 방문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방문일정 주선을 정부측에 맡기고 떠난 모양인데 정부측이 무성의하게(?) 대응해 하마터면 김총재의 헝가리 방문자체가 유산될 뻔 했다.
대국민 홍보차원만 노리고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떠난 측이나 외교 독점만을 노린 정부측이나 국익차원에서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이런 속사정을 지켜보면서 정치 지도자들마저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는 북방 어지럼병에 휩쓸려서야 되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부다페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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