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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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프랑스 재상「조르주·클레망소」가 라 쥐스티스 지 편집인으로 있을 때 젊은 기자들에게 한 말은 지금도 신문학 교과서에 자주 인용된다.
『여보 젊은 친구, 기사는 명사·동사·보어만으로 쓰시오. 형용사를 쓰려면 나의 허가를 받으시오.』
무슨 말인고 하니 신문기사에는 최상급의 수식어나 현란한 형용사는 가급적 절제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그뿐 아니라 신문 기사에는 기자의 주관이나 감정이 개입될 소지가 있는 표현은 되도록 피한다. 그래야만 독자들에게 객관적 사실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제 날짜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시리즈) 는 신문학 교과서에서는 낙제점수를 받을 기사다. 사할린에서 보낸 본지 최철주 특파원의 르포 말이다.
최 특파원이 호텔에서 채 짐을 풀기도 전에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우리 말이지예. 남조선에서 기자가 온다고 온통 화제라예. 오늘 식당도 덤벙덤벙 해치우고 기자동무 만나려고 일찍 가기로 했지예. 좀 기다리시소.』내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찡하게 전류가 흘렀다.
그도 그럴 것이「남조선」사람으로는 처음 사할린에 발을 들여놓은 최 특파원이 잔뜩 긴장하여 받은 첫 전화가 그토록 동포애에 주린 목소리였으니….
-『남조선에서 기자가 왔다.』그들은 나에게 소리지르고 울고 웃으며 껴안다가 잡아당기고 또는 손을 비틀었다. 그들은 본능적이고도 원초적인 국가적 감정을 표출해 기자를 목메게 했다.
정말 얼마나 감격하고 감동했으면 기자가 이런 원색적인 기사를 쓸 수 있을까.
그러나 최 특파원의 기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기사를 읽는 우리의 마음까지 울려놓고 만다.
-『나 남조선 올림픽 사진 보고 며칠밤 울고 또 울었다』는 75세의 한 할아버지는 기자의 가슴팍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소련령 사할린. 같은 소련인들조차「마로스」(너무 춥다) 라며 꺼려하는 변경의 땅.
그러나 사할린은 일본 북해도에서 소야 (종곡) 해협을 사이에 두고 50km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비행기로는 한국에서 3시간 남짓한 거리다.
그 사할린에 이처럼 고국을 목메어 그리는 6만여명의 동포가 있다. 강대국에 희생된 우리의 근대사가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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