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 “기분따라 법관 바꿀텐가…특별재판부 위헌 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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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부장판사가 국회가 추진 중인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재판부’ 구성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장을 지낸 황병하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5일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 국회의 특별재판부 추진 기사 내용을 올린 뒤, 그 아래 『지금 다시 헌법』(차병직ㆍ윤지영 변호사 저)’이란 저서의 문구를 이용해 이를 비판하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황 부장판사는 해당 글에서 “절대주의 국가에서처럼 국왕이 순간의 기분에 따라 담당 법관을 정하거나, 이미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법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리거나, 심지어 사건을 자신이 직접 결정할 때에는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황병하 서울고법 부장판사. [중앙포토]

황병하 서울고법 부장판사. [중앙포토]

이어 “어떤 하나의 사건만을 재판하기 위해 예외 법원을 설치하는 것은 금지된다”며 “더 나아가 재판을 요구하는 국민이 자신의 사건이 어떤 법원의 어떤 법관에 의해 처리될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추천한 판사들로 특별재판부가 구성되면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황 부장판사는 “어느 법원이 관할 법원이고, 어떤 규칙에 따라 사건이 배당되는지 미리 확정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그래야만 순간의 결정에 따라 담당판사가 바뀌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 [중앙포토]

서울고등법원. [중앙포토]

그러면서 “이는 사법제도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예를 들어 사건 배당을 단순히 법원 내 예규로 규정한 나머지 2008년의 촛불시위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가 법원장이 개입할 여지를 남긴 사례는 사법권을 법원에 독점시킨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이 잘못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벌도 받아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며 “그러나 그 사람에게 어떤 방법으로 책임을 지우고 또 어떤 방법으로 형벌을 가하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재판제도는 법관들의 문제지만, 그 전에 우리 국민의 문제”라면서 글을 마무리했다.

전례 없는 특별재판부 추진으로 법원 내부는 술렁이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국회가 추천한 판사들에 대해 중립성 논란이 생길 수 있고 삼권분립의 원칙 위배 소지가 있다”며 “앞으로 어떤 사안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특별재판부를 꾸리면 어떻게 재판의 공정성을 지켜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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