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죄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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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브라우닝」은 꽤나 어려운 시를 썼던 모양이다. 하루는 런던시인클럽에서 그의 시 몇 줄을 놓고 사람들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때마침 이곳에 들른「브라우닝」을 보자 사람들은 그 뜻을 좀 설명해 달라고 했다.
문제의 시를 잠시 읽고 난「브라우닝」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시를 쓸 때만 해도 하느님과 나는 그 뜻을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하느님만 알고 있을 것 같군요.』
프랑스수상「브리앙」이「만델」이라는 정치인을 평한 얘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그 정치인은 어찌나 거짓말을 잘 하는지 그가 하는 말은 거꾸로 뒤집어 보아도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요즘 그 비슷한 말 들을 우리는 5공 비리 수사에서 듣고 있다. 한 시절 권좌에서 목에 힘주고 다니던 어느 요인은 검찰 수사를 받으며『그것이 죄라면 달게 받겠다』는 묘한 말을 했다고 한다.『그것이 죄라면…』이라는 말속엔 다분히 냉소와 조소가 함께 담겨 있는 것 같아 참 듣기 거북하다.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안 보아도 본 듯하다. 그 순간 검찰관은 어떤 말로 대응했을지 궁금하다.
『팡세』를 쓴「파스칼」의 말이 생각난다.
『이상한 일이다. 사람은 자기 탓이 아닌 바깥에서 일어난 과오나 잘못에 대해서는 크게 분개하면서 자기의 책임으로 자신이 저지른 과오나 잘못에 대해서는 분개하지 않는다.』 요즘 청문회와 검찰에 뻔질나게 드나든 5공 비리 관련자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쩌면 그리 하나같이 궤변의 명수들인가. 5공화국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떡 주물러지듯 한 것은 아닌가. 전두환씨가 한일 치고 꼬이지 않은 것이 거의 없고, 어느 것 하나 비정상이 아닌 것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 시대를 빨리 청산하자는 요즘의 5공 비리 수사라는 것도 궤변에 휘말렸는지, 그런 궤변의 명분을 만들어 주었는지, 어쨌든 어영부영 끝나는 것 같다.
수사는 이제 시작인 것 같은데 어느새「대단원」의 막을 내릴 모양이다. 공청회도, 비리수사도 모두가 속 시원히 뚫리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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