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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정치적 중립, 그 섣부른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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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사회팀 차장

문병주 사회팀 차장

2003~2004년은 참 보람된 시기였다. 기자로서도 그렇지만 검사들도 그랬을 것이다. 대놓고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고, 관행이었던 대기업들의 불법정치자금 제공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힘들었던 기업인들조차 “검찰이 고마웠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검찰로서는 “가장 정치적으로 중립적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 수장이었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총장으로서 수사 독립과 정치적 중립만큼은 목숨 걸고 지키려 했다”고 한 강연에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재임 시절 “만일 중수부 수사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다면 제가 먼저 (저의) 목을 치겠다”며 정치권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움직임을 차단했다. 시민들은 그런 송 총장을 ‘송짱’이라고 부르며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떡을 들고 대검 청사를 찾았다. 후임 총장 역시 그런 대의를 고민하다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검찰을 정치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계속됐고, 정치권은 물론 시민들도 이에 호응했다. 그래서 모든 게 달라질 줄 알았다.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던 사람들이 그럴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이후로 그런 기대가 약해졌다.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사법 7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농단’이란 단어를 써 가며 사법개혁을 주문했다. 여기에 김명수 대법원장도 “엄정한 문책이 필요하다”고 화답했고, 시기가 묘하게 맞았을지 모르지만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이후 ‘수사 좀 한다’는 검사들과 수사관들이 속속 투입됐다. 연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말하지만 수사의 종료 시기를 알 수 없게 됐다.

뒤를 이어 박상기 법무장관의 ‘가짜뉴스’ 인지 수사 의지가 발표됐다. 고소·고발을 시작으로 명예훼손 여부를 가려내는 게 정석이었는데, 이제 알아서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허위조작정보는 보호받아야 할 영역이 아니다”는 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발언이 있자 발표됐다. 표현의 자유 침해 운운할 겨를도 없었다. 정작 피해자는 문 대통령이라는 분석이 나오는데도 수감돼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야말로 가짜뉴스의 가장 좋은 피해 사례라고 소개했다.

일련의 상황은 검찰에 ‘수사 독립’이란 단어를 적용하기는 이르다는 걸 스스로 보여준다. 그도 그럴 것이 검찰은 법원처럼 헌법상 삼권 분립의 대상이 아니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의 심기를 받드는 건 숙명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사권자의 권한을 건드리지 않고서도 가능한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원로 헌법학자의 고언이 힌트다. “개헌할 때 검찰총장의 임기를 헌법에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가능해진다.”

문병주 사회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