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14년만에 번듯해진 한국국제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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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北京)의 한국국제학교가 22일 마침내 새 교사(校舍)를 마련했다. 1998년 9월 빌린 건물에서 문을 연 이래 8년 만의 경사다. 한.중 수교 이후 14년이 지나서야 번듯한 '우리 학교'를 갖게 된 셈이다. 베이징의 국제적 위상이나 한국 교민 규모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보통 늦은 게 아니다.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수교가 비교적 최근에 이뤄진 탓에 교민 사회가 뒤늦게 형성된 게 이유다. 기업들의 진출이 늦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일단 학교 건립이 논의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무엇보다 교민이 적극 나섰다. 자기 자녀를 위하는 일인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거의 모든 교민들이 조금씩 성의를 보탰다. 기업들도 나섰다. 건축 자금을 댄 건 기본이다. 건설 전문인력을 파견해 입찰.시공 등 건설의 모든 과정을 도왔다.

마침내 한국정부도 나섰다. 1999년 12월 29일 정부는 157만 달러의 교사신축 비용을 지원했다. 그러자 베이징시 정부도 2001년 3월 한국학교 부지를 추천했다. 북한의 눈치를 본 듯 그동안 미온적이었던 태도가 뒤늦게 바뀐 것이다.

김태선 교장은 "5번이나 이사를 다니면서 설움도 많이 겪었고 말 못할 고생도 정말 많았다"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중국의 각종 제도적 장벽과 부딪히면서 현지 부동산 개발업자들을 상대하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개발비와 건축비.노임을 요구하는 통에 남몰래 속을 끓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모두'라는 단어였다"고 김 교장은 회고했다. 학교 건축에 교민.기업.정부가 한 덩어리가 된 덕분에 결국 모든 산을 무사히 넘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막판에도 시련은 왔다. 바로 준공검사였다. 학교 건물은 이미 지난해 완성됐다. 그러나 웬일인지 준공검사가 나오지 않았다. 검사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다. 김 교장은"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학교 담장이 너무 낮아서 중국 측이 준공검사에 소극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의 난입을 우려해 담장이 너무 낮은 점에 우려했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김 교장은 내부 회의를 거친 끝에 "학교 담장을 6m 높이로 올리겠다"고 중국 측에 통보했다. 담장 시공공사가 끝난 직후 곧바로 준공검사가 나왔다.

정부 지원금 500만 달러와 모금액 349만 달러를 들여 왕징(望京)개발구에 지은 새 교사는 부지 3636평, 연건평 3498평의 5층 건물로 현재 유치원생 117명, 초등학교생 514명, 중학생 160명, 고등학생 115명 등 총 906명이 재학 중이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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