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육아 매뉴얼도 없어 … 여성 버티기 힘든 스타트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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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커뮤니티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스여일삶)’을 만든 김지영. [사진 스여일삶]

페이스북 커뮤니티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스여일삶)’을 만든 김지영. [사진 스여일삶]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스여일삶)’은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여성들이 교류하는 온·오프라인 모임이다. 지난해 11월에 페이스북에 만들어진 이 커뮤니티의 1300여명 회원은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각종 고민을 나누고 업계 동향 등 여러 정보를 교환한다. 생긴 지 1년도 채 안됐지만 다양한 활동 덕분에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선 이미 널리 알려졌다.

커뮤니티 ‘스여일삶’ 만든 김지영씨 #스타트업 여성 고충 토로하는 모임 #“여성 권리 못 누려 외롭다고 느껴 #직원 10명인데 여성 1명인 곳도” #페북 본사, 우수 커뮤니티로 뽑아

‘스여일삶’은 27일 미국 페이스북 본사가 선정한 우수 커뮤니티 115곳에 한국서 유일하게 선정됐다. 1년간 운영되는 ‘페이스북 커뮤니티 리더십 프로그램(FCLP)’의 일환이다. 페이스북 본사가 커뮤니티 5곳엔 각각 100만 달러, 나머지엔 각각 5만 달러(약 5500만원)와 각종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스여일삶’을 만든 김지영(29) 씨는 5만 달러를 지원받고, 다음 달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로 가서 이번에 선발된 100여명의 커뮤니티 리더들과 함께 커뮤니티 운영과 관련한 리더십 교육을 받는다.

김지영 씨는 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반 회사에선 당연히 있는 출산·육아 등 관련 제도들이 스타트업에선 전혀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스타트업 여성의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싶어 ‘스여일삶’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2016년부터 스타트업에 몸담으며 여성 스타트업 인들의 고충을 들으면서 고민해왔다고 한다. 그는 현재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스타트업 ‘플래너리’에서 커뮤니티 플래너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부업으로 스타트업 선배와 이제 막 뛰어든 신생 창업가와의 만남을 글로 쓰는 일을 했는데 시니어 중 여성은 찾을 수 없었다. ‘국내에 10년 차 이상의 여성 스타트업 인들은 없는 걸까’ 궁금해졌다. 내 페이스북에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콘텐트를 만들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더니 ‘좋아요’가 순식간에 100개가 넘었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스여일삶)’의 회원들이 오프라인으로 만난 모습. [사진 스여일삶]

페이스북 커뮤니티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스여일삶)’의 회원들이 오프라인으로 만난 모습. [사진 스여일삶]

커뮤니티 운영은 김 씨 외에 운영진 5명이 함께 맡고 있다. 다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부업으로 운영진을 자원했다. 스타트업 여성들의 고민을 주로 다루지만 남자 회원들도 받는다. “여성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라고 남성들이 더 많이 알았으면 하기 때문이란다.

‘스여일삶’은 한 달에 한 번씩 점심 식사자리를 마련해 회원들을 모아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 4월에는 스타트업 단체들과 손잡고 업계 동향을 주고받거나 문제점을 토론하는 행사도 열었다.

“스타트업에선 직원 10명 중 여성 직원이 1명인 경우도 있다. 출산 휴가나 일과 육아 병행 등에 대해 많은 회사가 매뉴얼 자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서 함께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고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많은 여성이 외롭다고 느낀다. 직원 개인이 느끼는 압박감은 일반 대기업들보다 몇배는 더 크다. ‘스여일삶’ 모임에 나온 회원들은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면서 감정이 북받쳐 많이 운다.” 김씨가 전하는 스타트업계 여성들의 삶이다.

김 씨는 스타트업이 여성 직원들을 배려하면서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많이 시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잘 살려 기존 대기업들은 미처 도입하지 못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 원격 근무, 재택근무, 시간제 근무 제도 등은 큰 기업보다 스타트업에 더 최적화됐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본다.”

‘스여일삶’ 외에도 페이스북은 ▶인도네시아 미혼모를 위한 커뮤니티 ▶아프리카 전통 음식을 알리기 위한 커뮤니티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이 함께 산행하는 커뮤니티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커뮤니티 100여곳을 선정했다.

김 씨는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찾아 더 훌륭한 여성들이 스타트업 업계에 들어올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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