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합격과 낙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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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마라톤 주자들을 연상하자.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 외롭고 먼길을 고통과 고독 속에서 달러가야만 하는 마라톤 경주자들을 생각하자. 우직하리 만큼 맹목적으로 앞을 향해 달리며 자신의 체력과 끝없는 투쟁 속에서 마지막 골인을 향하여 말없이 달려가는 슬프면서도 위대한 마라톤 주자를 연상하며 대학입시를 향해 달려온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모든 마라톤 주자의 꿈은 1, 2, 3등 밖에 없는 입상대위에서 두 손 높이 들어 관중의 환호소리에 답하는 영광을 얻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뼈를 깎는 훈련과 부단한 노력,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견뎌내며 스타트 라인에 섰을 때, 자신의 기량과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골인의 테이프를 끊었을 때, 이것만으로도 그의 인생은 값진 것이다. 끝가지 주저앉지 말고 마지막까지 달려오는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대학입학 자체가 인생의 골인 지점일 수는 없다. 이제 막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합격 자체가 인생의 합격이 아니듯 불합격이 인생의 불합격일 수는 없다. 오히려 고통과 시련의 아픔이 먼저 왔을 뿐이라고 보고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는 새로운 성숙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은 길고도 험한 코스다. 좌절의 시련에 먼저 단련된 자가 더욱 값진 삶을 지닐 자격을 갖는다. 나중 됨이 먼저 됨을 능가하기 위하여 먼저 닥친 시련에 가슴 아파하지 말라.
마라톤의 입상대에 3명밖에 오르지 못하듯, 20만 명 미만의 대입정원에 60만 명의 입시 생이 불합격의 시련을 맞을 수밖에 없다. 대학 불합격이 불명예만은 아니다. 제2의 도전, 제3의 도전을 통해 극기와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새로운 도약의 디딤돌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학입학이 또 인생의 지름길이라는 사회의 고정관념도 타파되어야 한다. 대졸자 우대의 사회풍토가 살아있는 한 해마다 60만 명의 젊은이들은 인생의 뒷골목만을 걷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술과 능력위주의 사회풍토 조성을 위해서, 대학이 인생자격증이라는 사회통념을 깨뜨리기 위해서, 젊은 날의 가슴에 피멍을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의 교육풍토는 개선되어야 한다.
후기대학의 문은 더욱 좁다. 설령 후기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1백20여의 전문대도 있다. 12만 명의 정원을 수용하는 전문대의 학습풍토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자신의 취향과 능력에 맞춘 전문대학의 학습을 통해서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올리는 것도 좋은 길이다. 그것이 2년제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와 기업의 냉대를 받는다면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모든 젊은이가 대학에 진학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무작정 대학입학이 가져올 허무한 결과를 우리 모두 언젠가는 값비싼 대가로 치러야할 것이다. 대학의 의미가 전인교육에 놓여질 수 없다.
고교교육에서 광범위한 전인교육이 이뤄져야하고 대학교육은 소수의 특수집단을 위한 전문적 교육장으로 자리 매겨져야 한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대학우대의 울타리가 벗겨질 때 우리의 젊은이들은 밝고 생동감 넘치는 젊은 시절을 보내게될 것이다.
고교 3년 아니, 중학 3년과 국교6년 무려 12년을 대학입학이라는 맹목적 목표만을 향해 달려온 우리의 젊은이들이 불합격의 시련을 견뎌내며 새로운 도전을 거듭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젊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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