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비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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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일시 귀국한 박동진 주미대사가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몇몇 대목은, 그가 현지 외교관으로서 절절이 느끼는 감회의 일단을 보는 듯해 인상깊다. 성조기를 태우는 반미행동 보다는 국가의 현실적 이익을 위해서 「연미·비미」의 시각을 지녀야 한다는 지적이나 『북방정책은 물론 필요하죠. 그러나 기존 우방을 외면하면서, 기존우방의 자리에 북방정책의 대상 국들이 들어서서는 곤란하다』는 그의 발언은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기존 우방의 「자리」에 새로운 우방이 들어서는데 대한 우려는 외교적 측면에서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현실적이질 못함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아무리 외교관계가 힘의 논리로 좌우된다고 하지만 구우를 버리고 신우에만 급급 한다면 그것은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잃어버리는 결과만 남을 것이다.
출근길 아침마다 지나치는 내자호텔의 낡아빠진 건물을 보면서 지난 시절의 잔영이 새삼 실감난다. 1933년 총독부 경시청령 제21호로 최초의 아파트 건축규칙이 마련되면서 일본의 삼국석탄회사가 사원 숙소용 아파트로 지은 국내 처음의 아파트가 바로 내자호텔의 전신인 삼국아파트였다. 조선건축학회가 펴낸 『조선과 건축』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4층 본관 건물과 3층 별관 건물로 나뉘어 독신용 28가구, 가족용 41가구, 총69가구 규모였다 한다.
이 아파트가 미 군정청이 세워지면서 미군장교 숙소로 이어져 여군숙소로 사용되었다가 6·25전쟁 중엔 외국 취재기자단의 숙소로 이용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운크라의 숙소로, 유솜 요원들의 숙소에 이어 72년부터는 미8군이 이를 개조해 내자호텔로 재 개관했고 지난 11월 21일 이 호텔을 한국정부에 공식 반환한다는 합의를 마치면서 조만간 사라질 운명에 처해졌다.
열강의 힘에 밀려 우방들과의 자리 바뀜에 따라 운명을 달리하는 한 호텔의 슬픈 수난사를 지켜보면서, 구우와 신우의 자리 바뀜이 내자호텔의 주인 바꿔치기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지도 모른다. 대만대신에 중국을, 미국대신에 북방외교일 수는 없다. 자리 바뀜이 아닌 자리의 넓힘에 현실외교의 참뜻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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