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동 "거위털 뽑기" 김의겸 "통증"…민심 못읽은 경제비유 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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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법 개정안의 정신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다.”

정책취지 쉽게 전달 효과 있어 #노무현·박근혜도 즐겨 사용

2013년 8월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이 발언은 박근혜 정부의 조세 개편안을 두고 증세 논란이 가열되던 시점에 나왔다. 과거 프랑스의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이던 콜베르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지만 조세 부담에 대한 민심의 불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털 뽑히는 거위의 비명은 관심없는 포악한 정치”(박용진 민주당 대변인) 등 반발이 계속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관련 정책의 재검토를 지시했다. 결국 개정안 원안은 크게 후퇴한 내용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이처럼 정치권에선 경제정책에 대한 비유가 당초 의도와 엇나가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지난 12일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최악의 고용 지표가 나오자 “우리 경제의 체질이 바뀌면서 수반되는 통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여론의 반발을 샀다. 야당에선 “성장통이 아니라 곡소리”(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라는 힐난이 나왔고, 여당에서조차 “이게 성장통이니까 어쩔 수 없이 견뎌라, 이런 자세는 옳지 않다”(13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는 질타가 나왔다.

과거에 대통령이 직접 비유법을 쓰며 국정 상황을 설명하거나 정책 추진을 독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큰 호랑이가 작은 토끼를 못 잡는다” “정책은 살아 있는 물고기같이 펄떡펄떡 뛰어야지 축 늘어진 생선은 필요 없다” 등의 표현으로 정책 추진을 독려했다. 2015년에는 “불어 터진 국수를 먹는 우리 경제가 불쌍하다”며 경제 법안의 늑장 처리를 비판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비유를 들며 이야기를 풀어내곤 했다. 윤태영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자신이 쓴 책(『대통령의 말하기』)에서 노 전 대통령이 짤막한 문구나 속담 등을 잘 썼다고 전했다. 그 예로는 “젖만 짜도 될 텐데 소를 잡자는 것이다”(단기투자 자본규제 문제에 대해), “엉뚱한 길목에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정문수 신임 경제보좌관과의 조찬), “형님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먹는다”(캄보디아 정상상회담) 등의 사례를 들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경제상황을 ‘감기에 걸린 환자’로 표현하거나 “체력이 약할 때는 해열제나 기침약 등 대증요법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나라의 성장 엔진은 작동이 끝났다. 엔진을 바꿔야 한다”는 식으로 경제 혁신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지도급 인사들이 비유를 통해 국민에게 정책의 취지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건 바람직한 효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성장통’이나 ‘거위 깃털’의 사례처럼 민심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은 자칫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비유와 수사(修辭)법은 늘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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