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의 세비인상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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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의원이 장관급이냐 차관급이냐, 또는 의원 세비의 적정 선이 얼마쯤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탕과 입장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국회가 이번에 차관급인 의원세비를 장관급으로 격상시키면서 한꺼번에 또 85나 올리기로 한 것도 사람에 따라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3공화국까지 장관급 처우를 받던 의원들이 차관급으로 격하된 것은 국회를 무력화, 시녀화 한 유신 때의 일이었던 만큼 이제 권한이 강화되고 목소리가 드높아진 국회입장에서 이를 다시 장관급으로 복원하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래서 의원 세비를 장관의 봉급과 판공비에 맞추다 보니 한꺼번에 85%라는 대폭 인상의 결과가 나오게된 것이다.
그러나 의원의 격상을 지지한다하더라도 85%라는 세비인상의 결과는 찬성하기 어렵다.
우선 무엇보다 보수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는 관료적 발상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계급에 따라 급여가 다르고 급여가 신분수준의 척도라는 관념이 우리 공식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정치인인 의원들이 급여로 장관급의 신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과연 옳은 발상인가.
보수를 장관급에 맞춘다고 의원이 장관급이 되고, 차관급에 맞춘다고 차관급이 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보수야 어느 선에 맞추든 의원은 의원이고, 정치력과 활동여하에 따라 장관이 아니라 총리급 또는 그 이상도 될 수 있고 잘못하면 주사급도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의원 세비가 충분치 못하다는 점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구도 의원세비 월1백76만원이 많다고는 않을 것이며, 다른 공직자와의 형평이나 물가 추이에 따라 어느 정도 올려야 할 필요성은 인정할 것이다.
행정부의 장·차관급과 비교하더라도 그들이 승용차·사무실·비품·비서, 기타 공직수행에 필요한 경비를 제공받고 있지만 의원들은 승용차는 자기가 구입해야 하고 4명의 보조인력을 비서·운전사 등으로 쓰다보면 수시로 필요한 인력확보는 자비로 충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의원직수행을 위한 활동비도 세비에서 지출하게 돼있다.
이처럼 현행 세비는 부족한 게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하여 한꺼번에 85%나 껑충 올리는 조치는 납득하기 어렵다. 내년 공무원봉급 인상률이 9·7%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지나치다.
85%라는 대담한 인상률도 놀랍지만 악법개폐나 민생문제 논의에는 그렇게 늑장을 부리면서 자기들 세비인상에는 어쩌면 이렇게 능률적으로 여야가 손발이 척척 맞았는가하는 점도 놀랍기 짝이 없다. 4당 체제의 13대 국회가 서로 간에 의견이 안 맞아 개원한지 반년이 지나도록 국회사무총장조차 임명하지 못하면서 세비인상에서는 그야말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완벽하게 이뤄졌다 고나 할까.
지난 8월에도 국회는 의원보좌관 직급인상을 위한 법개정을 했으니 악법은 못 고치면서도 의원들 스스로를 위한 법개정은 벌써 두 번째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의원들이 제 머리 깎기 식으로 세비를 임의로 올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의원보수관계법을 고칠 경우고치는 그 국회의 임기 중에는 효력이 없도록 한 규정마저 삭제하고 이런 대폭 인상을 결정한 것은 낯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쪼록 국회가 이 문제로 국민의 빈축을 사는 일이 없도록 본회의통과에 앞서 개정안을 한번쯤 재고하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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