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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목소리 그리 어렵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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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장관 인사청문회가 ‘무탈’하게 끝나면 18개 부처 장관 중 7명이 현역 의원이게 된다. 전직 의원(홍종학)까지 포함하면 전체 장관의 거의 절반이 배지를 달고 있거나 달았던 이다.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짙어졌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왕 이런 김에 따라 했으면 하는 제도가 있다. 번역하면 ‘내각 공동책임(cabinet collective responsibility)’쯤 되는 헌법적 관습이다. 내각이 내린 결정에 대해 내각 구성원이 공개적으로 딴 얘기를 못 다는 것이다. 물론 대전제가 있는데, 결정 전 충분한 토론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영국의 경우 총리 이하 각료들이 매주 모여 비공개 회의를 한다. 혹여 국무회의를 떠올린다면 ‘실례’다.

이게 도입된다면 예를 들어 이런 논란은 덜 보게 될 것이다. 우선 일자리 전망치 공방이다. 정부가 지난해 말 올 경제 동향을 전망하며 연간 취업자 수 증가를 32만 명이라고 했다가 7월 중순 18만 명으로 수정했다. 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서”란 이유를 대는데 200일 사이에 14만 명이나 줄일 만한 인구 급감 사태가 있었는지 의아하지만 그건 그렇다고 치자. 지난달부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18만 명은 정부 전망치고 나는 10만~15만 명”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8월 나온 고용 상황과 인구 변화” 때문이라지만 그의 긴 설명을 듣다 보면 결국 인구변화 탓이다. 한 달 사이에 새삼 인구가 또 줄었다는 말인가, 매달 숫자가 바뀌면 그게 중계이지 전망인가 괴이할 정도다. 한데 주목하는 건 정부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수치를 대통령 참모(본질에서 비서)가 공개적으로 부인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 ‘내각 공동책임’ 제도 아래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혼선도 너무 오래 끌고 있다. 서울시와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가 이런저런 정책을 쏟아내곤 조율은 언론 지상을 통해 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더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2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주장하곤 당정협의하겠다고 했다. 중구난방이다. 이 정도면 진즉에 당사자들이 문 걸어잠그고 난상토론을 벌였어야 했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내각 공동책임’이란 제도가 생긴 건 역사적 경험에 의해서였다. 내각이 한목소리를 내고 한 방향으로 가야 그나마 일할 동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의원내각제가 아니어도 그래야 일할 수 있을 게다. 상식이다. 그런데 요즘 정책에 관한 한 당·정·청이 굴러가는 걸 보면, 그들에겐 상식이 아닌 모양이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